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사용하는 학습용 디지털 기기 화면. AI기반 학습 지원 앱이 제공하는 과학 과목 퀴즈 문제가 떠있다./조아현 기자


교실 문해력 저하의 주요 원인으론 SNS와 쇼츠 영상 등이 주로 지목된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이보다 먼저 꼽는 게 있다. 바로 교육용 스마트 기기다. 스마트 기기가 학생들을 스마트하게 만들기보다 또래 간 대화를 막아 오히려 문해력 저하의 '주범'이라는 게 현장 목소리다. 학생들이 학습용 디지털 기기 화면 속에 갇혀 생각의 폭을 넓히고, 비판적 사고를 키울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다.

현재 초등학생용 태블릿 기기에 탑재된 학습 프로그램 중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건 게임 형태의 AI 기반 학습 지원 앱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이 앱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움직여 마을을 돌아다니며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게 된다. 퀴즈를 맞힐 때마다 점수를 얻는다. 과학 과목에 들어가자 '물에 꿀을 섞으면 꿀의 단맛이 사라진다'는 OX 퀴즈가 나왔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퀴즈 랭킹과 참여 인원이 나타나 실제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서울 성북구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많은 학생이 자신의 캐릭터로 문제를 맞히는 데 집중하다 보니 다른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기 학습을 내면화할 시간이 없다. 주변으로 시선을 확장할 기회가 없어 (디지털 기기가) 아이들간 소통을 더욱 단절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동작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 B씨는 "거의 모든 교과가 수행평가를 할 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데, 학생들끼리 서로 도와주거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기가 점점 힘들다. 문해력 저하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다 소통 역량 부족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학습용 디지털 기기의 보급은 17개 시·도 교육청마다 차이가 있지만 2022년부터 본격화됐다. 서울시교육청은 그해 3월 처음 디지털 기기 9만여 대를 학교에 보급하기 시작해 올해까지 5년간 75만5996대를 지급했다. 이는 디지털 기기를 받은 서울 지역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전체 학생과 교원을 합친 숫자(69만1690명)보다 많은 것이다. 경기도교육청 역시 2021년 12월부터 디지털 기기를 보급해 2024년 학생 1인당 1대 보급을 완료했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의 읽기 영역은 2022년 515점에서 2025년 501점으로 뚝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디지털 기기가 학교에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급락한 것이다. OECD는 3년마다 주요 국가의 학업 성취도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의 읽기 영역 점수는 2018년 514점, 2015년 517점이었다. 이 때문에 디지털 기기 보급이 문해력 저하에 한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월 OECD가 발표한 디지털 교육 전망 보고서 역시 이런 우려를 담고 있다. 교실에서 생성형 AI 사용이 학생들의 과제 수행 능력을 높일 수 있지만, 학습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경고다. 2023년 튀르키예 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서 AI를 사용해 과제를 수행한 집단(A그룹)이 그렇지 않은 집단(B그룹)보다 48% 높은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AI 접근을 제한하고 시험을 치르자 A그룹이 B그룹보다 오히려 17% 낮은 성과를 나타냈다. AI에 의존한 학습이 스스로 이해 수준을 점검하는 능력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학습 효과에 부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교실에서 디지털 기기에 갇힌 아이들은 방과 후엔 모바일 기기에 갇힌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서울, 경기, 부산지역 중·고교생 5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에 이르는 264명(44.4%)이 하루 2시간 이상 SNS를 사용하거나 쇼츠 영상을 시청한다고 답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마트폰 세대는 글을 읽을 때 처음과 끝만 읽거나 2~3초만 보고 내용을 짐작해버리는 경향이 강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숙고하고 복기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21년차 국어학원 강사 C씨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이해하는 게 아니라 SNS 영상 속 하나의 이미지처럼 인식하고 넘긴다.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자기 생각을 말하거나 요약 정리를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