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의 한 공공기관이 집중호우 재난문자 시스템 모의발송 시연을 한 뒤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뉴스1


지난 7월9일 오전 11시쯤 강원 영월군 주민들에게 한 통의 재난안전문자가 도착했다. '수목도괴로 인한 무릉도원면 일대 정전이 발생하였습니다.' 전기가 끊겼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유까지 이해한 주민이 얼마나 될까.

'수목도괴'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단어다. 나무를 뜻하는 '수목(樹木)'과 넘어지거나 무너진다는 뜻의 '도괴(倒壞)'를 합친 말로, 쉽게 풀면 '나무가 쓰러졌다'는 뜻이다. '수목도괴로 인한(7글자)'이 '나무가 쓰러져(6글자)'보다 글자 수가 더 많기도 하다. 그런데도 주민들이 이해 못할 어려운 한자어를 행정기관이 남발하고 있다.



지난해 8~9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 강원 강릉시는 그해 9월19일 주민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문자메시지로 전했다. '대수용가 아파트(113개소)에 대한 시간별 제한급수를 금일 오후 6시부터 해제합니다.' 제한급수를 끝낸다니 더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대수용가 아파트의 뜻을 이해한 주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대수용가' 역시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상수도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시설' 정도로 풀어쓸 수 있다.

주민들이 위험을 신속하게 인식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행정기관의 재난안전문자에도 이해하기 힘든 한자어나 난해한 행정용어가 적지 않다.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학부생 연구팀이 취합한 재난문자 속 한자어 남용 사례를 보면 △수계환원(임시로 바꾼 수돗물 공급 경로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 △전력구(전력 케이블이 지나는 지하 통로) △산림연접(산이나 숲과 맞닿은 곳) 등 다양하다.

충남대 연구팀의 임휘찬씨(25)는 "재난문자를 접했을 때 연세가 많은 분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길 바란다"며 "현재 재난문자에 등장하는 단어 1만5134개를 어휘 종류와 난이도별로 정리해 공공기관이 재난문자를 입력하면 알기 쉽고 정확하게 우리말로 바꿔주는 AI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재난안전문자 발송 내역 데이터를 살펴보면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와 생소한 행정용어가 곳곳에 등장한다.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학부생 연구팀이 전국 각 지자체의 재난문자를 수집해 찾아낸 대표적인 한자어 남용 사례들이다./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한자어 학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지만, 어려운 한자어의 무분별한 사용이 시민의 이해와 소통을 가로막는 '문해력 장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하는 서모씨(26)는 매일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환자 보호자가 진료기록 사본을 발급받으려면 위임장을 작성해야 하는데, 서류에는 '위임인'과 '수임인'을 쓰는 칸이 있다. 서류를 받아든 상당수 환자 보호자가 각 칸에 누구 이름을 적어야 하는지 묻는다는 것이다.

'위임인'은 일의 처리를 부탁한 사람, '수임인'은 그 부탁을 받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위임인 칸을 '환자 이름'으로, 수임인 칸을 '환자 보호자 이름'으로 바꾸면 누구도 헷갈리지 않을 텐데, 관행적으로 어려운 한자어를 고집하는 사례다.

지난 2월 공공언어 개선 대상을 발표한 국립국어원은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를 '자동심장충격기'로, 기부채납(寄附採納)을 '기부받다'로 고쳐 쓸 것을 권고했다.

서은아 공공언어학회장(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교수)은 "언어 사용에 있어 읽고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는 언어 감수성이 중요한 시대"라며 "공공언어 실태를 정기적으로 살펴 쉽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기관을 선별해 평가에 반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