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서울 강서구 등원중학교에서 학생들이 국어과x역사과 융합 진로가치탐구보고서 작성 수행평가를 하고 있다./조현호 기자


1968년까지 모든 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돼 있었다. 이듬해 병기 정책이 폐지되면서 교과서에서 한자가 사라졌다. 그렇게 지금까지 58년째 이어졌다. 하지만 문해력 저하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한자 병기 주장은 힘을 얻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국립국어원이 2022년 발표한 표준국어대사전 어종별 현황에 따르면 사전에 등재된 올림말 수 42만2890개 가운데 한자어가 23만5173개(55.6%)로 절반이 넘는다. 고유어는 17.9%, 외래어 5.6%, 혼종어 20.9%다.



2014년 9월 박근혜 정부는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교별로 학습해야 할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 확대를 검토했다. 하지만 학습 부담 증가와 사교육 우려로 반발이 커지자 2018년 문재인 정부는 한자 병기 정책을 공식 폐기했다.

그러다가 올해 5월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 내부 회의에서 한자 교육 부활 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동행미디어 시대 취재 결과 확인됐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과서 본문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보다 밑단이나 어휘 해설서를 통해 한자어를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교과목별 학습량이 늘고, 교육 격차가 심화할 우려가 있다는 교육 현장의 반발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한자 교육'과 '한자어 교육'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획을 외우는 한자 쓰기 교육이 아니라 한자어 뜻풀이를 익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한자어 의미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의 의미를 이해할 때 문해력도 함께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은 동행미디어 시대에 "한자어는 한자 어원의 단어지만 우리말이 된 것이므로 토박이말처럼 취급해 학습하면 된다"며 "문장 안에서 쓰인 단어의 언어 요소는 맥락 속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비슷한 말과 반대말, 상위어와 하위어 등 어휘 관계망 교육을 통해 뜻을 익히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제작한 학습도구어 기반의 속뜻 풀이 카드./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예측'이란 단어가 있을 때, '미리 예(豫)'와 '헤아릴 측(測)'을 쓰고 읽는 것도 의미있지만,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헤아려 짐작한다'는 속뜻 풀이를 이해하는 게 한자어 교육의 핵심이다. 이 속뜻 이해를 바탕으로 예상(豫想), 예견(豫見), 예정(豫定) 등으로 어휘를 확장할 수 있다.

또 '가격'의 경우도 '값 가(價)'와 '이를 격(格)'을 알려주고 속뜻 풀이인 '값이 얼마에 이른다'는 의미와 함께 예문을 통해 정확한 사용법을 익히는 식으로 교육해야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기억 확장 학습도 가능하다. 어두울 암(暗)의 속뜻 풀이를 알면 암흑(暗黑), 암실(暗室)을 포함해 어두운 상태에서 똑똑히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억한다는 뜻을 가진 암기(暗記)까지 머릿속 어휘망을 넓힐 수 있다.

전광진 성균관대 중어중문과 명예교수는 "핵심 필수 한자를 외운다고 문해력 저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한자어 낱글자 각각의 뜻을 알 때 의미와 개념을 빨리 이해할 수 있고 장기 기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제작한 학습도구어 기반의 속뜻 풀이 카드./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학생들의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학습도구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학습도구어는 교과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필수 어휘를 정리한 것이다. 교과목별로 읽기 능력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맞춤형 교육 자료다. 하지만 학습도구어 역시 대부분 한자어여서 여전히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한계가 있다.

27년째 교단을 지키고 있는 정학재 보성여중 국어교사는 "EBS 학습도구어 2440개도 대부분 한자어 기반"이라며 "한자어와 뜻풀이를 같이 해주는 것이 어원의 이해나 단어 확장성 면에서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한자어 속뜻 풀이와 함께 정확한 의미를 구분하는 교육 활동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연구'와 '탐구' 또는 '개괄적'과 '포괄적' 처럼 유사한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맥락에 맞게 사용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이를 '상위언어 교육'이라고 한다.

학습도구어와 상위언어 학습 개념을 만든 신명선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학년별로 학습도구어 목록을 체계화하고, 상위언어 교육 활동을 정식 교과과정에 넣었으면 좋겠다"며 "이런 교육은 어휘 민감성을 높이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 문해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