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추풍령 나들목을 빠져나와 4번 국도를 타고 김천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길은 직지사(直指寺)로 이어진다. 길 따라 흐르는 직지천 물줄기 양쪽엔 아름드리 벚나무가 4km나 줄지어 자라고 있다. 주변의 노란 개나리와 어우러진 풍경이 좋아 상춘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고풍스런 일주문과 천왕문 주변엔 그에 어울리는 늙은 벚나무들이 봄볕에 졸고 있다. 바람이 건듯 불 때마다 난분분 흩날리는 연분홍 꽃비를 맞으며 경내로 들어선다.
절집의 목탁소리에 마음을 씻고
황악산(黃岳山, 1111m)은 크고 거친 산에 많이 쓰이는 악(岳)자가 들어가 있지만 바위산이 아닌 부드러운 육산(肉山)이다. 황악산 동쪽 품에 포근히 안긴 직지사는 418년(눌지왕 2)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집. 임진왜란 때 거의 다 불에 탄 후 400년 가까운 세월을 폐허로 있다가 1970년대부터 녹원스님이 30여년간 불사를 일으킨 덕에 지금의 대찰로 거듭 태어났다.
직지라는 절집 이름에 대해서는 유래가 여럿이다. 아도화상이 창건할 때 손가락으로 절터를 가리켜 절을 짓게 함으로써 직지사가 됐다거나, 능여대사가 절을 중창하면서 손으로 측량한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한다. 그렇지만 '직지(直指)'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줄임말이다. 이는 '가르침에 기대지 않고 사람이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직관하면 부처의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는 뜻이다. 마음 속의 부처를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직지사는 역사의 주요 인물들과도 인연이 깊다. 고려 태조 왕건은 여기서 목숨을 건졌다. 왕건은 후백제 견훤과 대구 팔공산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포위되자 부하장수 신숭겸의 도움으로 탈출해 직지사로 피신했다. 이때 당시 주지이던 능여조사는 왕건이 도움을 요청하자 하룻밤 사이에 삼은 짚신 2000켤레를 사방에 흩어 둬 후백제 군사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전답 1000결을 하사했고, 이후 직지사는 고려 왕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대찰로 성장했다.
조선시대엔 임진왜란의 구국 영웅인 사명대사(泗溟, 1544~1610년)가 직지사에서 출가한 인연이 있다. 사명대사는 15세에 양친을 여의자 인생무상을 느끼고 여기서 머리를 깎았고, 나이 서른 무렵엔 직지사 주지를 맡기도 했다. 현재 직지사 사명각엔 사명당의 영탱(영정으로 된 탱화)이 봉안돼 있는데, 사명각을 복원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판 글씨를 쓰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직지사와 인연이 깊다. 직지사 명부전엔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그리고 박 전 대통령 부모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죽은 사람의 넋을 인도해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명부전에 박 전 대통령 가족이 모셔진 사연은 이렇다.
김천과 이웃한 구미 출신인 박 전 대통령은 불교를 믿었던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 직지사를 자주 다녀갔다. 박 전 대통령 자신도 구미보통학교 시절 직지사로 소풍을 오곤 했다. 그런 인연으로 1974년 7월 직지사를 찾은 그는 당시 주지이던 녹원스님에게 부모님 영가를 모시고 천도재를 지내달라고 부탁했다. 한달 뒤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자 직지사 스님들은 육여사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했고, 5년 뒤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역시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서거일에 맞춰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직지사에서 가장 오랜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일주문·천왕문과 함께 아슬아슬 화를 면한 비로전(毘盧殿)이다. 일명 천불전(千佛殿)으로 불리는 비로전은 현겁 천불 부처님을 모신 법당. 고려 초기 경잠대사가 경주 남산의 옥돌로 16년간 빚었다는 비로전의 불상들은 모두 표정이 다르다. 미혼여성이 법당에 들어섰을 때 '천불 중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무는 불상이 장래 배필의 모습'이라는 속설이 있어 시집 안 간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또 불상 중엔 알몸인 불상이 하나 있는데, 민간엔 법당에 들어서자마자 이 불상을 발견하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전해온다.
천개의 불상은 모두 흰색으로 칠해져 있지만 알몸 불상은 중앙의 비로자나불 뒤쪽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원하는 대상이 아들이든 배필이든 부처를 뵐 때 경건해야겠지만, 사실 이 천불전은 누구든지 깨달음만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을 상징하는 전각이다.
꽃 피는 봄날 직지사에서 시를 읊었던 김삿갓
직지사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 대웅전 앞 3층석탑(보물 제606호), 비로전 앞 3층석탑(보물 제607호), 청풍료 앞 3층석탑(보물 제1186호) 등 많은 석조물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직지사에 있던 석조물은 많지 않다. 직지사 대웅전 앞 동쪽·서쪽에 서 있는 2기의 3층석탑, 그리고 비로전 앞에 세워져 있는 3층석탑은 1974년 경북 문경 도천사터에서 옮겨온 것이고, 청풍료 앞 3층석탑은 옛 강락사터에 무너져 있던 탑인데, 1968년 경북 선산군청 앞뜰에 옮겨 복원한 것을 1980년 직지사로 다시 옮겨 왔다.
직지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금동 육각 사리함(국보 제208호)은 경북 선산 도리사에 있는 세존사리탑 안에서 발견된 사리함이다. 한천사에서 출토된 금동자물쇠 등도 이곳에 있다.
직지사엔 방랑 시인 김삿갓의 발길도 머물렀다. 시 한편이 없을 리 없다. 전하는 말로는 김삿갓과 직지사 스님은 시 짓기 대결을 벌여 지는 사람의 이를 뽑기로 했다는데 결국 산전수전 다 겪은 언어의 마술사 김삿갓이 이겼다. '직지사 승려의 이를 뽑다(拔齒直指僧)'라는 시다. 제목은 제법 거칠지만 내용은 서정적이다.
금오라 했는데 눈이 쌓여 까마귀 머리가 희구나(金烏橒積烏頭白) / 황악이라는데 꽃이 피어 학머리가 붉구나(黃岳花開鶴頭紅) / 추풍인데 고갯마루의 봄꽃은 괴이 하고나(秋風嶺上春花怪) / 직지라 했는데 산중 꼬부랑길은 웬 말인가(直指由中路曲何)
시를 보면 황악산·추풍령·직지사는 모두 김천의 명소고, 금오산 역시 김천과 구미의 경계에 솟은 명산임을 알 수 있다. 직지사를 찾아오면서 만난 김천의 명소들을 시로 풀어낸 김삿갓 특유의 재치가 돋보인다.
올해 직지사 주변 벚꽃은 예년보다 다소 늦은 4월 셋째 주말인 17일(토) 무렵에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추풍령 나들목→4번 국도(김천 방면)→903번 지방도→직지사 <수도권 기준 3시간 30분 소요>
●숙박 직지사 입구에 김천파크호텔(054-437-8000), 알프스산장모텔(054-437-8933), 샤르망(054-431-6119), 카오스(054-432-7477) 등 모텔급 숙박업소와 공원민박(054-436-6328), 산마을민박(054-436-6811), 청솔민박(054-436-3408) 등 민박집이 있다.
●별미 직지사 입구에 송학식당(054-436-6403), 한일식당(054-436-6057), 경동산채식당(054-436-6029), 황악식당(054-436-6131) 등 산채정식을 차리는 식당이 많다. 더덕, 두릅, 목이버섯, 송이버섯, 조기 등 40여가지 반찬이 상에 올라온다. 요즘 같은 봄철엔 제대로 된 싱싱한 산채 맛을 볼 수 있다. 산채정식 1인분 1만3000원, 산채비빔밥 7000원.
●참조 직지사 종무소 054-436-6174, www.jikji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