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대전고속도로 고성 나들목으로 나와 14번 국도를 타고 마산 방면으로 10분쯤 달리면 당항포에 닿는다. 맑은 공기를 깊게 들이쉬며 바닷가로 이어진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면 왼쪽 언덕으로 전승기념탑이 보인다. 계단 입구엔 보초를 서고 있는 조선 수군 조형물이 실감난다. 20m 높이의 이 대형탑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들의 멸사봉공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제작한 것이다.
술집 기생 월이, 지혜도 승리에 한몫
전승기념탑 뒤쪽에 있는 당항포해전관은 이곳의 중심 공간이다. 임진왜란 당시 당항포에서 이순신 장군의 수군들이 왜군을 무찔렀던 두차례 당항포해전의 전투 상황이 디오드라마로 실감나게 펼쳐진다.
당항포해전관 주변엔 직접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는 실물크기의 거북선도 있다. 초대형 투구로 조성한 충무공디오라마관에서는 충무공 이순신의 일대기도 살펴볼 수 있다. 그 뒤쪽엔 충무공 영정을 모신 숭충사(崇忠祠)가 있는데, 참배하고 뒤돌아보면 장군의 함대가 왜군을 무찌르던 그 바다 당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의 당항포해전은 제1차 당항포해전과 제2차 당항포해전으로 나뉜다. 제1차 해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인 1592년(선조 25)년 6월5일(이하 음력)부터 6일까지 이틀 동안, 제2차 해전은 2년 뒤인 1594년 3월4일 치러졌다.
제1차 당항포해전엔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전선 23척, 이억기의 전라우수영 전선 25척, 원균의 경상우수영 전선 3척 이렇게 모두 51척이 전투에 참가했다. 6월2일 통영의 당포에서 왜선 21척을 격침시킨 연합함대는 당포에 정박해 전략 회의를 하던 중 거제도 주민들로부터 고성 당항포에 왜선이 피신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된다. 연합함대는 6월5일 아침 안개가 걷히자마자 당항포로 진격한다.
조선 수군은 왜군의 육지 탈출 봉쇄와 주민 보호를 위해 왜선을 바다 한가운데로 유인한 뒤 포위하고 맹공을 가했다. 왜선 대부분은 여기서 격침됐고, 도주하는 나머지 왜선들도 모두 추적해 불살라버렸다. 이때 도망친 패잔병들을 소탕하기 위해 작전상 왜군의 전선 한척을 남겨 두었는데, 이 역시 이튿날 새벽 조선 수군이 불태워버렸다.
제2차 당항포해전은 1594년 3월4일에 벌어졌다. 이는 조선 연합함대 124척이 참가한 대규모 해전. 여기서 조선 수군은 왜선 31척을 격파하는 전공을 올리며 또 다시 압승을 거뒀다. 당시 당항포 2차 해전이 벌어졌던 음력 3월4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4월23일 당항포 숭충사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당항포대첩 제전 향사'가 열린다. 1988년 제1회 제전향사를 모신 후 매년 봉향하고 있다.
그런데 당항포는 지세가 특이하다. 동쪽 입구는 닭의 목처럼 좁은데, 안쪽엔 널찍한 만이 길게 형성돼 있으며 서쪽은 막혀 있다. 전술을 모르는 문외한이 봐도 작전상 아주 위험한 곳이다. 그렇다면 당시 왜군 함대는 왜 입구만 있고 퇴로가 전혀 없는 당항포로 갔을까. 이와 관련해 고성 일대엔 '기생 월이'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가을, 승려로 가장한 일본 첩자는 남해안 일대에서 정보 수집을 하고 있었다. 이때 첩자의 정체를 알아챈 고성읍내 무기정이란 술집의 기생 월이는 그를 술 취하게 한 다음 그의 지도에서 당항만 서쪽이 바다로 연결되는 것처럼 지도를 조작했다. 즉 그녀는 고성반도를 섬으로 바꿔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월이'란 이름을 지닌 기생에 주목해보자. 아마 어쩌면 월이라는 기생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후세에 백성들에 의해 지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왠지 기생 월이는 실존 인물인 것만 같다. 이순신 장군이 23전23승이라는 세계 해전 사상 유례가 없는 대승을 거둔 데는 장군 이하 참모들의 빼어난 전략전술과 용감무쌍하게 적진으로 돌진했던 휘하 장졸들의 역할이 컸다. 여기에 물길 사정을 잘 아는 어부들, 왜선의 동향을 파악해 결정적인 첩보를 제공한 백성들의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어찌 역사에 길이 남을 대승이 가능했을까.
지명으로 남아있는 당시 전투 흔적
당항포 주변엔 당시 전투와 관련된 지명이 수도 없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 노인들은 당항포 일대를 아직도 '속싯개'라 하는데, 이는 왜군을 속여 승리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배둔리 남쪽 해안의 '잡안개'는 왜군들을 잡았다는 곳이고, 당항리 동쪽에 있는 '핏골'은 왜군의 피로 물들었다고 해서 지어진 것이다. '도망개'는 왜군이 도망간 길목이란 뜻이다. 또 봉동리의 '어선개'는 아군의 함정이 어선으로 가장해 숨어 있다가 왜선이 만(灣) 안으로 완전히 진입한 뒤에 포위해 왜선을 격침시킨 격전지요, '떼무덤'은 떼죽음 당한 왜병들을 묻었다는 곳이요, 군진(軍鎭)마을은 당항포로부터 상륙하는 왜병을 섬멸시킨 진지라 한다.
마암면의 지명 유래는 좀더 자극적이다. '머리개'는 해전에서 패해 소소강(沼所江)을 따라 도주하던 왜병의 목이 무수히 바다에 떠밀려 마을 앞바다로 왔다고 하여 부르게 됐고, 삼락리 곤기마을 동쪽에 있는 '무덤개'는 왜군의 사체가 떠 밀려와 무덤을 이뤘다고 붙여졌으며, 두락정(頭洛亭)은 왜병의 잘린 머리가 밀물에 밀려 마을 앞바다로 떠왔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물론 이 지명들 중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나중에 당항포해전과 관련해 각색된 곳도 있겠지만, 당시 민초들이 당항포해전의 승리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당항포를 둘러싸고 있는 당항만은 아름답다. 물 맑고 경관 좋은 바다를 둘러보는 중간중간 바닷가에서 공룡발자국 화석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당항포 국민관광지엔 이 외에도 국내 최초의 자연사박물관과 4D입체 영상관, 1억년 전 공룡을 만날 수 있는 엑스포주제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입장료 일반 6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 주차료 승용차 2000원. 전화 055-670-4502~3
여행정보
●교통 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통영돚대전간고속도로→고성 나들목→14번 국도(마산 방면)→당항포 관광지 <수도권 기준 4시간30분 소요>
●숙식 당항포관광지 사업소에서 펜션(055-670-4501, 오후 6시 이후 055-670-2804)을 운영한다. 53m²형(4인 기준)이 성수기(7월20일~8월25일) 15만원, 비수기 주말 10만원, 주중 8만원. 1인 추가시마다 이용료 1만원 추가. 당항포 입구에 오아시스여관(055-672-3383), 리베모텔(055-673-3441), 청록장(055-673-4230), 썬프라자여관(055-673-9060), 청기와여관(055-673-6161) 등 숙박시설이 많다. 제2주차장 근처엔 황토랑민박(055-672-9533), 히딩크민박(055-673-4965) 등이 있다. 당항포 관광단지 안에 백반정식(5000원), 비빔밥(6000원) 등을 차리는 식당이 있다.
●참조 고성군청 홈페이지 www.goseong.go.kr 문화관광과 055-670-2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