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범 지식경제부(상공부, 산업자원부, 동력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포함)를 거친 관 출신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이희범 회장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고 이석채 회장, 유영환 부회장은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쳤다. 한준호 부회장과 김상열 부회장도 각각 중소기업청장, 무역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쳤다.
범 지경부 인맥이 뜨고 있다. 관 출신 이력을 바탕으로 민간 부문으로 옮아갈 때는 여러 시비도 나오지만 이들은 전문성과 폭넓은 경험을 업무에 접목해 호평을 받고 있다.
이들과 달리 과거 정부 부처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범 기획재정부(재무부, 경제기획원, 금융위원회 등) 인맥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 진출한 이들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범 기재부 주요 인사들은 정부 산하기관 수장을 지내는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 뜨는 지경부와 지는 기재부, 두 부처 출신 인사들의 이직 쌍곡선을 들여다봤다.
◇잘 나가는 범지경부 인맥
산업자원부 장관과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내고 지난해 3월 STX로 온 이희범 회장은 얼굴 마담이 아닌 영업맨이다. 이 회장은 올 들어 이라크와 두바이 등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왔고 지난해에도 아부다비 등 중동 지역을 샅샅이 훑었다.
해외 인맥이 두터운 그와 오너인 강덕수 회장의 노력 등을 바탕으로 STX는 속속 해외 수주 성과를 거두고 있다. STX는 1분기에 이라크 석유화학플랜트 등 총 70억달러 어치의 계약 수주에 성공한 것을 비롯해 잇따라 수주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룹 주변에서는 이 회장에 대해 "장관직에 이르기까지 기업 지원업무를 맡으면서 기업의 생리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장관 재직 시절에도 기자 대상 브리핑이나 회의에서 수치 하나도 놓치지 않던 이 회장 특유의 부지런함과 꼼꼼함도 기업 경영에 접목되고 있다.
유영환 부회장은 한국금융지주, 한국투자증권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 3월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에 영입된 그는 2005~2006년에는 한국금융지주 부사장(동원증권 부사장)을 지낸 적이 있다.
산자부 산업정책국장, 정통부 정보통신정책국장을 지내다 민간기업으로 나갔던 것. 하지만 폭넓은 식견과 추진력을 가진 그는 이내 1년여 만에 다시 정부 고위직으로 영전, 2006~2008년 정보통신부 차관과 장관을 연이어 역임했다.
그는 2년여 뒤 다시 한국증권과의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한국증권은 “향후 글로벌 금융회사로서 회사의 변화를 이끌 기획 및 전략의 수립을 위해 유 부회장의 능력과 경험이 꼭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아이폰 판매 등을 통해 통신업계 판 뒤집기의 주역으로 꼽히는 이석채 KT 회장은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이다.
그는 2009년 초 공모를 통해 납품비리로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KT의 선장을 맡으면서 민간기업의 CEO로 데뷔했다. 최근 들어 초스피드로 KT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대표적인 혁신전도사로 주목을 받고 있다. KT 주변에서도 과감한 혁신 드라이브를 통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공직시절부터 빠른 두뇌 회전을 바탕으로 거침없고 자신감 넘치는 달변을 자랑했다. 의전과 격식에 얽매인 공무원이었지만 20조원 매출 이상의 KT그룹 수장에 오른 뒤로는 수행원을 대동하지 않고 상가를 홀로 찾을 만큼 소탈한 면모가 알려지기도 했다.
이석채 회장은 경제기획원 예산실장과 재정경제부 차관을 거쳐 정통부 장관으로 갔지만 결국 IT 쪽 이력이 더 커진 경우다.
이에 비해 한국전력 사장을 거쳐 삼천리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준호 부회장은 정통 기재부 맨이다. 그는 동력자원부 석유정책과장, 석유가스국장, 상공자원부 자원정책국장, 산업자원부 기획관리실장, 중소기업청장 등 범 기재부에서 과장, 국장, 실장, 청장을 지냈다.
에너지 관련 요직을 30년 이상 두루 거친 정통 ‘에너지맨’ 한 부회장은 해외 네트워크가 강해 에너지 관련 사업 기존 산업 구조에 미래형 사업을 접목해 성장을 도모하는 삼천리에 꼭 필요한 인물로 꼽힌다.
이밖에 OCI에 영입된 김상열 부회장은 산업자원부 무역정책국장,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을 역임했다. 태양광산업 등의 강자로 동양제철화학에서 OCI로 사명을 바꿀 정도로 변화를 추구하는 현 시점에서 김 부회장의 다양한 경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도 동력자원부와 통상산업부를 거쳤지만 일찍 관료의 길을 접고 기업인으로 인정을 받은 경우다. 상공자원부 통상정책과장, 통상산업부 미주통상담당관, 특허청장, 산자부 차관을 거친 김종갑 하이닉스 이사회 의장도 하이닉스 대표로 반도체 경기 하락,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등 악재에도 회사가 지난해 192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흑자전환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먹는 범 기재부 인맥, 관치금융 시비 여전
잘 나가는 범 지경부 출신과 대조되는 부처도 있다. 기획재정부는 상대적으로 전직 관료들의 민간 전직에 난관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 유관기관이나 산하기관 수장으로 가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은행, 금융지주회사 등 민간 회사로의 길은 사실상 막혔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조달청장 출신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이 있긴 하지만 은행 쪽을 살펴보면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박병원 전 경제수석(재경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차관 역임)이 사실상 마지막이다.
관치 논란이 일기도 했던 KB금융지주 회장으로는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재경부 국고국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과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대표(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장, 기획관리실장 역임) 등이 도전했지만 입성에는 결국 실패했다.
또 금융사는 아니지만 금융투자협회 회장과 한국거래소(KRX) 이사장직에도 범 기재부 출신 인사들이 자천타천 도전했지만 모두 민간 출신 인사에게 고배를 마셨다. 여신금융협회장으로 이두형 전 증권금융 사장(금융위 기획행정실장 등 역임)이 앉았지만 이마저도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해서 범 지경부 출신들이 주로 가는 기업은 주인이 확실해 낙하산 시비에서 자유로운 반면 범 기재부 출신들이 희망하는 금융사 등은 대주주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불필요한 구설을 원치 않는다는 견해가 나온다. 관치금융 시비와 논란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것도 장애 요소다.
물론 이석채 회장과 유영환 부회장은 정보통신부 이전에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어 범 기재부 인맥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사석에서 “재무부, 기획원 출신 후배들이 우수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아쉽다. 나같은 경우에도 기획원 경력이 아닌 정통부 장관으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경우”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주변에서는 현대건설 회장 등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인으로 활동할 당시 재무부쪽 관료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있어 이들의 민간 이직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자원개발 등 기업 신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포진한 부처가 지식경제부"라며 "정부보다 기업의 영역과 역할이 더 커지는 것도 이 같은 차이가 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