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항공이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촬영한 TV 광고의 한 장면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광고에 등장한 여성이 다름 아닌 대한항공 오너의 딸이라는 점. 바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IMC) 팀장이다.
그는 올봄 뉴질랜드에서 진행한 TV 광고 촬영에 동행했다가 현장에서 즉석 캐스팅돼 광고에 출연하게 됐다. 당초 현지인 모델을 쓸 예정이었으나 “한국인이 좋겠다”는 촬영스태프의 의견을 받아들여 직접 번지점프에 과감히 몸을 던진 것이다.
2010년 들어 재벌가(家) 여성들의 왕성한 경영행보가 시선을 끌고 있다.
'장자 상속'의 엄격한 틀 속에 그동안 재벌가 딸들의 위상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올해는 그룹내 핵심보직을 거머쥐거나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룹 경영의 핵심지대로 바짝 다가서는 모습이다.
한진家 조현아·현민 자매
TV광고 출연 등 이색 아이디어로 조직에 ‘새바람’
올 들어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는 역시 조현민 팀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를 졸업하고 2007년 3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후 대한항공과 진에어 등의 광고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그는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조직내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앞서 거론한 ‘뉴질랜드 편’을 비롯해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중국, 중원에서 답을 얻다' '지금 나는 호주에 있다' '동유럽 귀를 기울이면' 등 올해 노출된 대한항공 TV CF의 대부분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스타크래프트 마케팅’도 빼놓을 수 없는 조 팀장의 작품으로 꼽힌다.
지난 5월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1’의 결승전을 개최한 것이나 9월 이 대회 ‘시즌2’ 결승전을 상하이에서 개최해 국내외 e스포츠 팬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모았던 것 모두 조 팀장이 진두지휘한 성과다.
조 팀장의 언니이자 한진그룹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의 행보 역시 동생과 궤를 같이 한다.
대한항공 기내식 기판사업본부장인 조 전무는 지난 1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올리비에 '유방암 의식향상 캠페인'에 참석해 유방암 퇴치 및 예방 활동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년 유방암 예방 캠페인 행사에는 꼭 참여할 만큼 사회봉사활동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이보다 앞선 9월에는 LA상공회의소 및 캘리포니아 주지사실 주최로 한국에서 열린 '캘리포니아 무역 및 관광협력 증진을 위한 리셉션' 행사에 참석, 아놀드 슈워제네거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만나 한진그룹과 캘리포니아주간 관계개선에도 일조했다.
당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LA 금융 중심부에 위치한 윌셔그랜드호텔을 최첨단 친환경 호텔(45층)과 오피스 건물(65층)로 바꾸는 한진그룹의 '월셔 그랜드호텔 프로젝트'를 칭찬했는데, 그 프로젝트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조양호 회장과 조현아 전무다.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조 전무는 1999년 7월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한 후 호텔기판사업본부 기내판매팀장과 기내식사업본부 부본부장을 거쳐 2008년 12월부터 기내식기판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웰빙기내식 메뉴 개발과 비빔밥을 비롯한 한식 기내식 세계화 등으로 대한항공의 기내식 품질을 명품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비빔국수 기내식 개발을 주도해 ‘국제기내식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국제기내식협회(ITCA) 머큐리상을 수상한 화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삼성家 이부진·서현 자매
면세점·에버랜드 ‘공격경영’에 매출 청신호
한진가 자매들 못지않게 올 들어 삼성가 딸들의 경영보폭도 넓어지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는 면세점 사업과 에버랜드, 유통 등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위치를 새겨가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호텔신라)을 성공시킨 데 이어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 유치를 성사시킨 성과가 대표적이다.
지난 4월 루이뷔통 모에헤네시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방한했을 때는 직접 인천공항에서 그를 만나 인천공항내 호텔신라 면세점에 루이뷔통 매장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이런 모습을 두고 이부진 전무가 공격적인 경영행보를 가속화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삼성에버랜드에서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경영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이 전무는 지난 3월 매출을 ‘10년 내 8조원 규모로 끌어올린다’는 비전을 내걸었다. 이어 푸드컬쳐사업부(급식,식음료 유통)와 리조트사업부(테마파크,골프장) 등으로 조직을 재정비하고 심혈을 기울인 끝에 올 상반기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일궈냈다.
최근에는 오는 12월 임대계약이 끝나는 김포공항 면세점을 놓고 신영자 롯데면세점 사장과도 일전을 준비하는 등 공격경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부진 전무의 바로 아래 동생인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는 최근 패션 사업 글로벌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지난 2월과 9월, 패션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 컬렉션에 '구호(Kuho)'를 처음으로 진출시켜 성황리에 패션쇼를 마친 것을 비롯해 올해 런칭한 토리버치, 르 베이지 등의 브랜드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대기업은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여성복 사업은 안된다'는 편견을 없앴다.
이를 토대로 향후 이 전무는 패션 미래사업 발굴과 브랜드 포트폴리오 확장에도 심혈을 기울여 제일모직의 글로벌 기업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롯데家 신유미
호텔롯데 고문에 190억 ‘돈방석’
재벌가 딸들 중 경영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올 들어 그룹 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한 사례도 눈에 띈다.
롯데가의 신유미 씨가 대표적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세번째 부인인 ‘미스 롯데’ 출신 서미경 씨의 외동딸인 신씨는 올 2월부터 호텔롯데에서 임원급 고문직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는 일본 도쿄 사무소에서 파견 근무를 하며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베일에 쌓인 행보를 보여왔던 점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신유미씨의 고문 선임이 향후 롯데가의 후계구도에도 변화를 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신씨는 또 어머니 서씨와 함께 2008년 말 롯데쇼핑 주식을 매입한 이후 최근 약 190억원의 평가이익을 내 화제를 낳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