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

벼랑 끝에 몰린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의 이지송 사장이 지난 10월19일 국토해양위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그는 “공사의 경영정상화가 이뤄진다면 당장에 물러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연장 요청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엄청난 부채규모를 떠안고 있는 LH공사의 경영정상화가 요원한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사실상 손실 보전을 위해 LH공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강한 요구인 셈이다.

LH공사법 개정안은 국책사업을 하면서 입은 손실을 정부가 대신 보전해주는 손실보전법안이 포함돼 있다. 보금자리주택을 포함해 주거환경개선사업이나 산업단지개발사업 등 대통령이 정한 사업에 대해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주는 내용이다.

LH공사의 부채는 6월 말 현재 118조원. 이 때문에 매일 100억원에 가까운 이자를 물고 있는 형편이다.

공사 부실 해법은 ‘판매’

“전원판매, 총력판매, 전량판매, 부채는 Low, 희망은 High”

경기도 분당의 LH공사 사옥 구내식당에 걸려있는 구호다.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 이지송 사장이 내놓은 해법은 ‘무조건 팔아라’다.

올해 초 이 사장은 토지와 주택 매각에 힘을 싣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사장은 3월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팔리지 않은 토지와 주택이 20조원에 이른다”며 충분한 자산이 있음을 내비쳤다. 자산을 팔아 재무구조를 개선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에는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했다. 이곳에서 내놓은 4대 중점 추진과제 중 첫 번째도 자산 매각 총력이다. 노사 공동결의문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경상경비 10% 이상 절감과 휴가반납, 1인1건의 판매운동, 원가절감 10% 달성 등 고통분담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 사장이 보는 LH공사의 곳간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일단 팔기만 하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다.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공사 부실문제를 질타하자 이 사장은 보유하고 있는 땅이 많기 때문에 곳간이 비어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답변은 더 큰 질타를 불렀다. 송광호 국토해양위원장까지 “LH공사를 살릴 수 있다면 계속 사장을 하라.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물러나는 게 공사나 나라를 위해서 좋다”고 몰아부쳤다. 그렇지만 공사법 통과를 재차 주문하는 이 사장의 뚝심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사업 축소 불가피

118조원에 이르는 부채는 결국 사업축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 사장은 사업구조조정을 위해 매년 45조원의 사업규모를 15조원 가량 줄여 연 30조원으로 축소한다고 10월19일 밝혔다.

LH공사의 사업내용을 보면 사업지역은 414개로 1억8000만평이고, 사업비는 425조원이다. 진행 중인 사업은 276개 1억2000만평이며 282조원 규모다. 나머지는 아직 보상을 하지 않은 사업지다.

결국 사업축소 지역은 나머지 138개 사업지가 된다. 사업지별로 시기조정, 단계별 추진, 사업방식 변경, 장기보류 등 4단계로 나뉜다. 진행 중인 276개 사업지는 예산 집행시기를 분산해 부담을 완화할 예정이다.

한편 공사의 일방적인 사업 축소 결정으로 지역민들의 피해 보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사 국감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재산권 행사를 제한당하고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는 등 불안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면서 “대토 등 손실에 따른 보상 체계를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이 사장은 다음달 중순까지 사업재조정과 관련한 지자체 협의와 주민설명회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1년 맞는 초대 사장, 팀 구원할까

이지송 사장은 2003년부터 3년 동안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통합되면서 초대 사장으로 영입됐다. 그는 현대건설 시절에서도 경영정상화를 일궈낸 경험이 있다.

LH공사 초대 사장 자리의 경쟁률은 21대 1. 이처럼 치열한 경합 속에서 이 사장을 선택한 것은 곧 118조원에 이르는 공사의 채무부담을 낮추라는 요구와 맞닿아있다. 이 사장으로서는 강력한 재무구조 개선의 사명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 사장의 역할을 ‘1점차로 지고 있는 팀의 9회 초 만루 상황에 등판한 구원투수’로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절박하고 물러설 곳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 그가 일찌감치 은퇴를 했어도 어색하지 않은 70의 나이에 젊은 국회의원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공사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서다. 공사법이 통과되면 한계에 와있는 채권발행이 가능해져 보금자리 주택 등 신규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국민 세금으로 공사 부실을 충당하려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사장이 공사법 통과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LH공사의 위기극복을 위한 유일한 희망의 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직장 후배이면서 다양한 정관계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이 사장이 출범 직후부터 부실논란에 휩싸였던 LH공사를 구원할 수 있을지 정·관계가 주목하고 있다.


<약력>
1940년 충남 보령 출생
1963년 한양대 토목공학과 졸업
1970년 한국수자원공사 입사
1976년 현대건설
1998년 경인운하(주) 대표이사 사장
2000년 경복대학 교수
2003년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2007년 경복대학 총장
2009년 LH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