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조용한 골목길 한 켠, 평범하지만 넓은 정원이 인상적인 집 한 채. 이곳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집이다. 대문 한쪽에 얌전하게 걸려 있는 ‘뿌리의 집’이란 간판이 눈에 띈다. 뿌리의 집. 다름아닌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다.
 
한국에서 생명을 얻었지만 한국인으로 자라지 못한 이들은, 이곳에서 한국을 여행하고 뿌리를 알아가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다. 올해로 7년째 뿌리의 집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김도현(56) 목사를 만났다. 어쩌면, ‘대한민국’이란 이름 만으로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이들을 감싸 안고 더없이 밝은 행복을 만들어가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았다.

 


◆해외입양인들의 쉼터, 뿌리의 집
 
1년에 400명. 머나먼 나라에서 한국을 찾아와 이곳에 머무는 해외입양인들의 숫자다. 그렇게 입양인들을 맞이한 지 7년, 김 목사를 스쳐 지나간 이들만 3000여명에 달하는 셈이다. 김 목사는 “이들도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의 일부인데,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땅 한국에서 호텔에 머무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며 “누군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양인이라고 하면 어두운 그림자부터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실제로 이들과 지내다 보면 밝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을 이었다.
 
“처음 고국 땅을 찾은 이들은 많이 놀라고 많이 행복해 합니다. 입양인들은 대부분 백인사회에 서 피부색이 다른 존재로 홀로 자라온 이들입니다. 그런데 자신과 모두 같은 피부색의 이곳에선 군중 속에 완벽하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평화를 느끼고 행복해 합니다. 무엇보다 가난한 줄만 알았던 자신의 고국이 이렇게 문명이 발달한 곳이라는 데 많이 놀라죠.”
 
해마다 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이곳의 문을 두드리지만, 안타깝게도 동시에 머물 수 있는 인원은 15명 정도. 사람이 너무 많아 북적거리면 행복할 수 없다는 김 목사의 판단에 따라 세운 원칙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이니까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더욱 이들에게 보금자리가 돼 주고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도록 거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죠.”
 
김 목사의 얘기를 듣자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김 목사와 이들의 인연은 처음 어떻게 맺어진 걸까?
 
김 목사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옛 이야기를 꺼내 든다. 20여년 전, 김 목사는 스위스에서 9년간 머물 기회가 있었다. 한국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 중 하나는 스위스의 한국입양인들을 보살피는 것. 그러나 김 목사는 “당시만 하더라도 입양인이라고 하면 한국인으로서 왠지 수치심도 느껴지고, 그들의 상처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1993년 어느 날, 바젤에 살고 있던 23살 꽃다운 나이의 한국인 입양인이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일이 일어났다. 장례식장에 찾아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수 밖에 없었다는 김 목사. 순간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안함이었기에,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했어요. 그때부터 교회 사람들과 해외입양인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한국 음식을 마련해 입양인들을 위한 조촐한 파티를 벌였죠. 그중에 한명이 김치 냄새를 맡더니 저에게 그러는 거에요. ‘25년 동안 자기 코끝에서 맴도는 냄새가 있었는데, 오늘에야 그 냄새를 알았다’고요.”
 
이게 시작이었다. 김 목사는 해외입양인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갖으며 인연을 키웠다. 그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들에게 상처를 준 나라이기에 막상 한국에 첫발을 딛기까지 마음 속의 갈등도 많았을 겁니다. 그래도 지금 여기를 찾은 이들이라면, 어려운 고비를 한 단계 넘어선 이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먼저 따뜻하게 그들을 맞아 줄 준비가 필요한 겁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비결? “공감-질문-모색”
 
“사실 입양은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축복이지만, 그보다 먼저 원래의 가족과 이별하는 ‘상실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상실감을 치유해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열립니다."
 
 “내가 이들을 위해 특별히 많은 일을 하고 것처럼 보이겠지만 알고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 전부”라는 김 목사. 그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저녁 시간 식탁에 앉아 밥을 같이 먹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이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김 목사는 어떤 것도 먼저 묻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상실과 치유는 해외입양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김 목사는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실감으로 인해 고통 받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지 않냐”며 “해외입양인들은 물론 누구라도 우리의 동행자로 받아들이고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그러나 공감과 동정은 구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공감과 동정은 다르죠. 동정으로 무조건 베풀어 준다고 이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 중에 ‘당사자 주의’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해결 방법이 됐든 주체는 입양인 자신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양인들이 자신의 얘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하면, 뿌리의 집에서는 이를 위한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발판이 돼준다. 전시회를 열고 싶다면 전시회 공간을 마련해주고, 한국을 배우고 싶다면 필요한 곳을 찾아준다.
 
“뿌리의집은 해외입양이라는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마이크’같은 곳입니다. 이들이 어떤 소리를 내더라도, 자유롭게 그 소리가 세상에 울려퍼질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곳이죠. 이들과 함께 느끼고 질문하고 모색해 나가는 것, 그게 우리 사회를 더욱 ‘공감하는 사회’ ‘행복한 사회’로 이끌어주는 힘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