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사무실. 사내의 모든 처장과 실장, 사업소장들에게 감사실 명의의 공문 하나가 전달됐다.

'최근 인사이동을 앞두고 경영진의 거취와 관련한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급속히 유포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언비어를 전파·유포하거나 단순 문의하는 사실이라도 확인될 경우 당사자를 포함해 해당부서의 상관까지 엄중 문책할 것입니다!'

'유언비어 차단 긴급지시'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이 공문은 최근 김쌍수 한전 사장을 둘러싸고 사퇴설이 확산되자 감사실이 사내 직원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일종의 엄포성 공문인 셈이다.

이와 관련 한전 안팎에서는 사장의 사퇴설 진위여부를 떠나 회사에서 지나치게 직원들의 입단속에 나선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전 직원들 사이에서도 당사자뿐 아니라 해당부서 상급자까지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것은 감사실의 지나친 충성모드라는 불만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김쌍수 사장의 사퇴설은 도대체 어떻게 흘러나오게 된 것일까?
 
◆발전 자회사 재통합 '물거품'에 리더십 타격
 
지난 2008년 8월 민간경영인(LG전자 부회장) 출신으로는 최초로 한전 사장에 취임한 김쌍수 사장의 공식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취임 당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였지만 임기 3년째에 접어들면서 관가와 공기업 주변을 중심으로 사퇴설이 나돌았다. 김 사장이 얼마 전 지식경제부에 사퇴서를 제출했고 확대간부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사퇴설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당시 소관부처인 지경부와 기획재정부의 당국자들은 사실확인에 나섰고, 한전 측은 "루머로 끝난 얘기이고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이후 사퇴설은 다소 진정국면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그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역시 김 사장의 경영 성과와 관련된 것들이다.

김 사장은 그동안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한국수력원자력 및 5개 화력발전 자회사(남부발전, 동서발전, 남동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와의 재통합 추진 소신을 강하게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 8월 발전 자회사의 독립성을 더욱 강화하는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방안에 따라 재통합 구상은 무산됐다. 설상가상 발전 자회사에 대한 경영평가와 임원 선임권마저 기획재정부로 넘어가면서 리더십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또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난 2006년 발행한 해외교환사채의 풋옵션 조항에 따라 채권자의 요청으로 5년 만기 사채를 3년 만에 조기상환해 지난해 4986억원의 환차손을 봤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렇게 5000억원에 가까운 막대한 환손실을 보고도 지난 6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유일하게 최고인 'S등급'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한전 직원들에게 총 378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해 '돈 잔치'를 벌였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밖에 국민권익위로부터 제출받은 '2009년 청렴지수'에서 한전 직원 대부분이 인사 관련 금품제공 등 부패경험이 있다고 응답해 김 사장의 리더십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물론 김 사장이 캐나다의 6조원대 풍력·태양광 발전단지 건설사업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1조5000억원대 가스복합화력 발전소 공사를 수주하는 등 일부 성과를 내긴했지만 결국 발전 자회사들과의 통합 무산과 '성과급 잔치' 등이 김 사장의 사퇴설을 끌어낸 주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탁 거절, 정부에 미운 털?
 
경영성과와 무관하게 김 사장이 정부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정치권과 정부의 인사청탁을 일절 받아주지 않고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도 "흔들림 없이 인사권을 행사하라"며 인사청탁 근절에 주력했다. 인사청탁을 한 사람을 무보직으로 발령 내기까지 했다.

지금껏 정부의 압력과 영향을 많이 받아온 한전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정부와 인사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김 사장의 의지가 의외로 정치권에 많은 적을 양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김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말레이시아 출장길에 오르려다 갑자기 취소한 것을 두고도 정치권과의 관계가 나빠진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런 가운데 '성과급 잔치'가 논란이 되고 한전 후임사장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해지면서 김 사장의 사퇴가 임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었다.

실제 한전 안팎에서는 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주무부처인 지경부와 다른 경제부처 관료, 공기업 전현직 사장 등이 한전 신임사장으로 올 것이라는 얘기가 퍼졌다.  

다른 공기업보다 훨씬 무성한 하마평을 양산하는 곳이 한전 사장 자리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잘 갖춘 한전은 정치권, 정부, 국민들 모두에게 확고한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인이나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둔 이들이 모두 탐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전 측은 최근의 사퇴설과 관련 "100% 낭설"이라고 못박고 "직원들도 크게 동요치 않고 평상시처럼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