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맛도 없었다. 뼈다귀에서는 썩은 피의 숨이 막힐 듯한 냄새가 나서 곧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또 뜯어 먹어보았다. 게우지만 않으면 무슨 효험이 있겠지. 요는 배를 달래두는 것이었다. (소설 <굶주림> 중)"
121년 전 소설을 읽었다. '크누트 함순'이란 노르웨이 작가가 쓴 <굶주림>이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라서 읽은 건 아니다. 연초에 들었던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굶주림'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했다. 끼니를 거른 적은 있어도 굶주린 적은 없는 자로서, 도대체 어떤 상태가 굶주림인지 알고 싶었다.
기이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분명 굶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거지 노인이 구걸하자 마지막 남은 양복 조끼를 전당포에 맡겨 돈 몇푼을 나눠준다. 자신에게 연정을 품었던 여인이 보내준 돈을 여인숙 주인에게 던지듯 줘버린다. 집에 개한테 먹이려한다며 썩어가는 뼈다귀를 얻어다가 남몰래 뜯어먹는다. 팔리지 않는 글을 쓰면서도 도통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 그는 구걸하지 않을까. 도둑질을 하지 못할까. 글을 포기하지 못할까. 아마 그의 '굶주림'은 저개발국 절대빈곤에서 오는 굶주림과는 좀 다른가 보다. 오히려 노량진이나 신림동 고시촌 청년들의 굶주림과 비슷해 보인다.
고시학원과 고시원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사는 청년들에게 '밥'은 '배를 달래두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000원짜리 편의점 김밥이든, 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2000원짜리 김치볶음밥이든 상관없다. 하루 한끼만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 꿈 때문이다. 경찰, 승무원, 공무원, 교사, 검사 등등 제각각 이루고 싶은 건 다르지만 나중에 그걸 하고 싶으니 지금은 상관없다고 여긴다.
아는 의사들한테 그 이야기를 전하니 안타까워한다. 생산한지 오래된 식재료에 각종 첨가제를 넣어 맛을 낸 김밥이나 볶음밥엔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은 거의 없고 칼로리만 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신선한 음식을 제대로 못 먹으면 나이 들어서 당뇨, 혈관질환 같은 온갖 성인병에 시달릴 위험이 높아진단다.
한국전쟁 세대 중 어릴 적 굶주림을 자주 겪은 사람은 노인기에 당뇨병 발병률이 높더라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스웨덴에서도 과거 굶주림이 극심했던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나중에 고혈압, 출혈성 뇌졸중에 걸리는 확률이 높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단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못하는 건 배를 채우는 것일 뿐, 필요영양은 굶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얘기를 취업준비생들한테 들려주면 뭐할 것인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제대로 된 밥을 먹기 위해 돈 벌러 가라고 할 것인가. 소설 '굶주림'의 주인공은 결국 굶주림으로부터 도망치듯 외항선에 보조선원으로 올라탄다. 지금으로 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비정규직 일이다.
문명 이전에 사람들은 굶주림을 일으키는 자연과 싸웠다. 그러다가 각종 농기구와 비료 만드는 법, 가축 키우는 법을 발전시켰다. 흙 한번 만져본 적 없는 이도 돈으로 밥을 사먹는 문명국가, 자본사회에선 문명이, 자본이, 사회가 우리의 '자연'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과 싸우고 무엇을 발전시킬 것인가.
문명국에서 굶주린다는 것
에코라이프
이경숙 이로운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