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년보다는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증시를 둘러싸고 있는 '빙하'(氷河)가 모두 녹고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활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당분간 녹록지 않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자산관리에서 위기극복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위탁매매수수료(브로커리지)에 치우쳐 있는 수익구조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자산규모가 큰 우수고객 확보를 통해 수익 안정성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증권사 CEO, 자산관리 '사활'
국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하나같이 올해 새해 첫인사에서 '자산관리'(WM)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기범 대우증권 사장은 "앞으로 다가올 저성장 시대에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터운 고객기반 확보가 중요하다"며 "고객자산 유치를 중심으로 자산관리 영업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져 자산관리형 영업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도 신년사를 통해 자산관리영업체제로의 전환을 조속히 완료해 자산관리영업의 원년이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현재 예탁자산 1억원 이상 고객을 7만명 이상 보유하며 증권업계에서 가장 탄탄한 우수고객 기반을 다지고 있는 삼성증권도 올해 자산관리 경쟁력 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석 삼성증권 사장은 "고객의 자산증식과 자산관리에 대한 모든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을 사명으로 압도적 1등, 대한민국 대표 초일류 증권사를 향해 나아가자"며 "향후 5년간 우수고객수를 현재의 두배로 늘리겠다는 목표의 달성 여부는 올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삼성증권은 신규 우수고객 확대를 위해 기존 IB(투자은행)영업과 퇴직연금영업 등 법인대상 영업을 통해 구축한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기존 고객들에 대해서는 시황에 상관없이 진정성을 갖고 꾸준히 접촉하면서 관계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조직정비 등 준비 박차
증권사들은 자산관리 역량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산관리 담당부서를 확대하거나 상품개발 능력 제고를 위한 조직을 신설하는 등 준비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초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초고액자산가 담당조직을 기존 리테일본부에서 분리해 SNI본부로 격상했다. 본부장은 방영민 부사장이 맡았다. 하나대투증권은 20억원 이상 고객들을 대상으로 개인별 맞춤형 금융서비스와 법인 자산관리까지 제공하는 PIB(Private Investment Banking)를 대폭 강화하기 위해 52명의 전문가를 사내 공모해 영업점에 배치했다.
대우증권은 PB영업 강화를 위해 초고액자산가(HNW)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팀을 신설했다. 또 신규고객을 대상으로 '특별한' 금융상품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특판상품 판매를 진행할 계획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초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프리미어 블루'(Premier Blue)를 확대 개편했다. 자산관리 경쟁력의 큰 축인 상품개발 및 판매역량 강화을 위한 '상품총괄'이란 조직도 신설했다. 상품총괄 산하에는 상품개발 태스크포스(TF) 미래상품발굴단도 상설화했다. 미래상품발굴단은 작년 7월 말 사장 직속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동양증권도 상품전략본부와 PB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전국 주요거점에 'W프레스티지센터'를 개설했다.
증권사들은 영업점에도 손을 댔다. SK증권은 지난달 말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자산관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PIB센터 중심으로 지점체계를 개편했다. SK증권은 일반지점을 줄이고 영업부PIB를 비롯해 서울 압구정·서초·송파·역삼·명동PIB센터를 신설, PIB센터를 기존 2곳(강남·도곡PIB센터)에서 8곳으로 확대했다. 대신증권은 11개 지점을 대형화했고 현대증권은 자산관리대형점포(WMC) 4곳을 설립했다.
◆수익모델 변화 '생사기로'
증권사들은 자산관리 부문에서 역량을 얼마나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불황 타개 여부가 판가름 나는 것은 물론, 금융투자회사로서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다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권사들은 시장경쟁 심화로 인한 수익성 하락으로 정형화된 비즈니스 모델로는 생존하기 어려워졌다"며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 증권업계에서 살아남은 증권사들은 자산관리형 모델로 정착한 대형사와 온라인 증권사, 도매영업으로 특화된 증권사였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과거 일본이 겪었던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주식위탁매매수수료 수익기여도가 약 50% 수준이었던 일본 증권사들은 1990대 거래대금이 감소하면서 수익보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위탁매매수수료 수익 비중이 40~50% 수준인 국내 증권사들도 지난해 거래대금이 급감하면서 수익에 큰 타격을 입었고 브로커리지 중심의 수익모델의 한계를 노출시켰다.
우 연구원은 "자산관리형 모델로의 변화가 해외시장 진출이나 프라임브로커리지 사업보다 브로커리지 수익에 치우쳐 있는 현재 수익구조의 한계를 벗어나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시장은 대부분 홀세일(Wholesale) 영업을 타깃으로 하는데 이는 자본규모나 인력 등에서 세계적인 금융투자회사들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고 헤지펀드 시장이 걸음마 단계인 현시점에서 프라임브로커리지 수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설명이다.
개인의 금융자산이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자산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점도 증권사들이 장기적인 수익원 확보를 위해 자산관리 역량 강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따르면 국내 가계 금융자산 규모는 지난 2002년 1000조원에서 2010년 2000조원으로 증가했고 작년 6월 말에는 약 2400조원까지 불어났다. 투자가능자산이 100만달러 이상인 고액자산가는 2011년 현재 14만4000명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많다.
박신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의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자산관리시장에서 노후관리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자산관리시장의 환경 변화와 규모 확대는 증권사들이 장기 수익원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