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긴축'으로 가야한다는 부채시대에서의 성장 논문에서 엑셀 계산 오류가 발견돼 경제학계를 뒤흔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셀이 잘못은 없지만 일각에서는 자료를 만들던 사람이 입력을 잘못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계 경제를 망친 주범은 엑셀’이라는 불명예까지 안겨주고 있는 상태다.
미국 현지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해 JP모건체이스은행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런던고래사건, 선물청산회사인 MF글로벌의 파산, 모기지보증회사인 페니 메이의 잘못된 결산보고서 문제도 엑셀에 입력을 잘못한 탓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 2010년 하버드대 교수인 카르멘 라인하르트와 케네스 로고프가 발표한 ‘부채시대에서의 성장’이라는 논문이 최근 엑셀에서 자료 입력의 실수가 나타나 사실상 긴축을 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지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라인하르트-로고프는 이 논문에서 정부 부채에서 티핑포인트, 즉 결정적인 임계치를 찾아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르면 부채비율이 90%를 넘게 되면 경제성장률은 급격히 떨어진다는 논리다.
당시 라인하트와 로고프는 44개국의 경제지표를 분석, 한 나라의 부채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90%를 넘을 경우 연간 -0.1%의 실질GDP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다만 90% 미만일 경우 둘의 상관관계는 적다고 봤다.
이 논문이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시대적 타이밍 때문이다. 그리스가 채무 위기에 빠진 가운데 그리스 경제정책의 중심을 부양에서 긴축으로 옮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던 가운데 발표된 이 논문은 곧이어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들이 낸 책인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의 경우 순식간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정도였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논문에 대한 반대의견이 쏟아졌다. 부채와 경제성장률 사이의 반비례관계는 ‘부채비율이 높으면 낮은 성장률을 초래하기 마련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부진한 경제성장률이 높은 부채를 초래한다’는 역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면서 논문 자체의 논리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엉뚱한데서 더욱 황당한 문제가 터져나왔다. 겉보기에 동일해 보이는 부채 및 성장과 관련된 데이터를 활용해 글을 쓰려던 다른 연구원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라인하르트-로고프와 똑같은 수치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수많은 요청에 두 손을 든 라인하르트와 로고프는 다른 연구원들에게 자신들이 활용한 스프레드시트 원본을 검토할 것을 허락했다.
그 결과 자료를 입력할때 일부 데이터가 누락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대로 자료를 입력한 결과 국가채무가 90%를 넘는 나라의 GDP 성장률은 연간 -0.1%가 아니라 실제로는 2.2% 성장했다는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
미 대통령 후보였던 롬니의 러닝메이트였고 현재 하원 예산위원장인 폴 라이언 의원이 국가 예산정책을 결정하는데 반영되기도 했던 이 논문이 힘을 잃게 됐다. 결국 엑셀의 입력 실수가 미국경제의 회복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재정긴축의 신봉자들과 재정확장론자들간의 힘겨루기에서 확장론자가 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재정확장론자인 폴 크루그먼은 지난 18일 뉴욕타임즈에 ‘엑셀발 불황(The Excel Depression)’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크루그먼은 기고문에서 "3년 동안 확장에서 긴축으로의 정책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라며 "긴축지지자들은 경제연구에서 국가부채가 GDP의 90%를 넘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주장했지만 경제연구는 그런 것들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소수의 경제학자들만이 높은 부채가 부진한 성장률을 이끈다는 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했을 뿐 그외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도 정책 결정자들은 실업자들을 내동댕이쳤고 긴축으로 방향키를 돌렸는데, 그 이유가 그들은 긴축을 해야만 했던 것이 아니라 긴축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크루그먼은 "라인하르트-로고프의 연구결과에 오류가 드러남으로써 긴축지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무너졌으니 앞으로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동시에 이 주도면밀한 용의자들이 긴축을 추대하기 위한 구실로써 경제분석의 또 다른 불분명한 연구결과를 찾아낼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불황은 언제까지든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