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이라는 말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청춘의 때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연히 느껴지는 진지함보다는 보드라운 햇살과 평화로운 바람이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곳이다. 여기서는 서둘지도 힘들지도 말고 시간을 즐겨보자.

 

대흥사 와불
◆굽이굽이 돌다리 건너가는 길

대흥사에 간다고? 아까 입구를 지난 것 같은데 뭐가 안 나온다. 그런데 시내를 따라 돌다리도 많고 새소리 물소리 들으며 가는 길이 산책만으로 충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서부터 대흥사 대웅보전까지는 아홉개의 구비와 다리가 있는 ‘구림구곡(九林九曲) 십리숲길’이 유명하다고 한다.

입구 쪽에는 한옥집이 하나 있다. 이곳은 ‘유선장’, 100년 된 한옥여관이다. ‘천년’ 고찰의 격에 딱 어울리는 전통 가옥이다. 원래는 대흥사에 오는 신도나 수도승의 객사로 사용하던 곳인데 이후에 문인과 작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등장하는가 하면,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 <천년학>, <장군의 아들> 등에 빼놓지 않고 등장시켜 이곳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입구에 걸려있는 커다란 거울하며 마당에 있는 오래된 나무 분재도 정겹고, 신관과 구관이 보여주는 확연한 색깔 차이도 흥미롭다. 구관의 낡은 기와는 햇빛을 받아 그 색깔이 다채롭고, 뒤뜰에 널려있는 빨래가 이곳이 사람 사는 곳임을 말해준다.

어느덧 부도전이 보인다. 사찰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서산대사의 부도를 비롯한 80여기의 부도와 탑비가 미리부터 이곳의 역사와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건너편에 있는 돌비석 경고문이다. ‘꽃과 나무를 꺾지 맙시다’라고 붉은 글씨로 제법 진지하게 써 놓았다. 쓰고 남은 비석 돌로 만든 듯한데, 색도 변했고 이끼가 내려 앉아 이마저도 고찰과 무척 어울리는 구조물이 됐다. 어쩌면 수십년 후에 문화재가 될는지 모르겠다. ‘붉은 색’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곳 장춘동계곡은 동백나무 숲이 유명해 늦은 봄까지 떨어진 꽃잎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개나리, 벚꽃, 동백, 유채, 배꽃 등 순서대로 피는 봄꽃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대흥사
유선장
◆자연이 선물한 최초의 와불

마침내 대흥사 도착이다. 안내문을 읽어보면 신라 진흥왕 5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천년’ 고찰이라더니 1600년이나 된 사찰이다. 그런데 해탈문에서 적잖이 당황스럽다. 사천왕상이 없다. 이유는 북쪽의 영암 월출산, 남쪽의 송지 달마산, 동쪽의 장흥 천관산, 서쪽의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어 풍수적으로 완벽하고 그래서 사천왕상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놀라긴 이르다. 진짜는 해탈문을 지나야 나온다.

문을 지나자 푹 꺼진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온다. 보통은 법당의 지붕 위로 높이 솟은 산의 모양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여긴 그 반대다. 양쪽으로 암벽 봉우리가 탄탄히 끝을 잡아주고, 그 사이는 완만하고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며 어떤 형상을 만들고 있다. 와불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호랑이, 코끼리, 거북이 등의 모양으로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큰 바위들을 만나는데, 여긴 바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부처님의 머리, 오른손과 왼손, 꺼진 다리선, 그리고 발등까지 완벽하다. 따뜻한 남도의 햇살을 받으며 파란 하늘아래 누우신 모습이 천상 와불이다.

 

예전에 해외여행에서 가장 오래된 와불을 본 적이 있는데, 생각해 보면 여긴 산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있었으니 이것이 최초의 와불이지 싶다. 아직 경내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같은 자리에 서서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며 입이 다물어질 줄 모른다.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은 하늘이 주신 것을 뛰어 넘을 수 없다. 대흥사는 자연과 환경의 덕을 입고 1600년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한편 이곳은 차로도 유명하다. 대흥사에서 700m 정도를 올라가면 일지암이 있는데 이곳은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1786~1866년)가 1826년부터 40년 동안 머문 곳이다. 초의선사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의 당대의 대학자와 교류했는데, 이들 역시 차로 유명한 선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략하는 곳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둘러보는 게 좋겠다. 일지암에 오르면 멀리로는 대흥사가, 앞쪽으로는 차 밭이 보인다. 생각해보면 빛 좋고 물 좋으니 해남은 차의 고장이 되기에 알맞은 조건을 지녔다. 확실히 자연이 고마운 고장이다.

 

두륜산 전망
◆이곳에서 남도를 품다

사람들은 끝이라 하지만 이들은 시작이라 한다. 그래서 '머리 두'(頭) 자를 썼다. 두륜산은 국토 최남단의 산이기도 하지만 산이 시작 되는 곳이기도 하다. 두륜산 하면 케이블카로도 유명한데, 단순히 이쪽에서 저쪽으로 편히 이동하는 것 외에도 오를 때의 묘미가 있다. 국내 최장 1.6㎞의 케이블카는 오르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 운행시간은 8분, 창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약간 울렁거리기도 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고도를 높이는 케이블카 창문 밖으로 동백나무, 철쭉, 단풍나무, 백소사나무 등 철마다 볼거리가 화려하다. 1100여종의 수목이 자생하고 있는데 제주도 다음으로 많은 수종이라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길을 따라 10분이면 두륜산 고계봉 전망대에 도착한다. 나무 계단이라 험하진 않지만 땅 끝의 풍경을 본다는 설렘 때문인지 심장이 유난히 벌렁거리고 숨이 차오른다. 마지막 한 계단까지 꾹꾹 밟으며 도착! 해발 638m의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정상에 오르면 경관이 듣던 대로다. 완도와 진도가 보이고,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첩첩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이 정도는 기본이다. 멀리 영암의 월출산, 광주 무등산을 볼 수 있으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보인다.

누구나 한번씩 ‘땅 끝’에 서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해남으로의 여행은 숙제를 잘 한 기분이다. 끝이건 시작이건 계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곳, 해남에 서 보는 것도 좋겠다. 사람들은 끝이라고 했지만 해남 사람들은 시작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무언가 비장한 울림을 얻는다. 따뜻한 남풍이 불어오는 해남에서 잊고 있었던 새해의 다짐을 다시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 해남 대흥사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당진영덕고속도로 - 서천공주고속도로 - 서해안고속도로 - 2번국도 - 남해고속도로 - 영풍교차로에서 ‘월출산,성전’ 방면으로 우측방향 - 선제교차로에서 ‘독천, 월출산’ 방면으로 우측 방향 - 월산교차로에서 ‘진도, 완도, 해남’ 방면으로 우측방향 - 공룡대로 - 해남터널 - 평동교차로에서 ‘해남, 고산유적지, 대흥사’ 방면으로 우측방향 - 평동교차로에서 ‘고산유적지, 대흥사, 삼산’ 방면으로 좌측방향 - 고산로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대흥사: 검색어 ‘대흥사’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799
두륜산케이블카: 검색어 ‘두륜산케이블카’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 대흥사길 88-45

● 여행 주요정보
대흥사
http://www.daeheungsa.co.kr / 061-534-5502~3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일반 3000원 / 군경·중고생 1500원 / 어린이 1000원
주차장 이용료: 승용차, 승합차 2000원 / 버스 3000원

두륜산케이블카
http://www.haenamcablecar.com / 061-534-8992~4
운행시간: (4~11월) 오전 8시~오후 6시 / (12~3월) 오전 8시 ~ 오후 3시
이용요금: 대인 9000원 / 소인 6000원 / 경로, 장애인, 국가유공자 8000원

< 음식 >
돌고개가든: 해남은 닭 요리가 유명하다. 닭 한마리를 잡아 코스요리로 선보이는데, 닭회, 닭주물럭, 닭백숙, 닭죽 순으로 나온다. 특히 닭회가 독특한데, 남도 특유의 감칠맛 나는 양념과 어우러져 생각보다 거북하지 않고 쫄깃하면서 부드럽고 맛있다.
닭 코스 5만원 / 오리주물럭 5만원 / 오골계삼계탕 2만5000원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430-5 / 061-537-7100
천일식당: 해남은 어느 식당이나 맛이 좋다. 천일식당 역시 전통의 유명세를 타고 있다. 특히 떡갈비와 석쇠 불고기는 특유의 불맛을 자랑하고, 반찬 하나하나가 평범한 듯 하지만 개성이 있다. 채 치지 않고 고유의 식감을 느낄 수 있도록 덩어리로 나오는 해파리 냉채는 꼭 맛봐야 한다.
떡갈비정식 2만5000원 / 불고기정식 1만9000원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읍내리 34 / 061-535-1001

< 숙소 >
함박골 큰 기와집: 부모님이 잡으신 터에 부모님이 키우신 소나무로 한옥집을 지었다. 황토방 숙박의 쾌적함도 좋지만 집이 가진 의미와 오랫동안 가꾼 정원이 저절로 휴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전통주 체험이나 천연염색 체험도 가족 여행자들에게 인기다.
예약문의: 061-533-0960
객실가격: 5만~20만원
전통주 담그기 체험(7명 이상 가능): 2만원(1인당)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차경길 48-8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