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출장 가는 길에 우연히 같은 곳을 지났다. 하루 전만 해도 북적이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썰렁했다. 어젯밤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다음 주말 이곳은 또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영원한 밀물도, 영원한 썰물도 없다는 평범한 세상의 이치가 문득 떠오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밀물이 오면 언젠간 썰물로 빠져나가고, 썰물이 끝나면 밀물이 다시 온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직전 시장 패턴 버려라
돈이 밀물처럼 잘 들어올 때 열심히 저축하지 않고 방만하게 소비하다가 돈이 떠나간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투자의 세계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며 좋은 투자결과를 얻는 데 필요한 건 밀물과 썰물이 반복해 나타남을 인식하는 것이다.
주가가 오를 때 적극 주식을 매수하는 밀물이 지나고 썰물로 바뀌면 상투에 물린 사람들의 손실과 허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때로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투자자를 가장 헷갈리게 만드는 시기가 밀물이 들어오는 초기와 썰물이 나가는 초기다.
상승추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초기엔 직전 부진하던 장세로부터 전환되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락하거나 횡보하던 상태에서도 주가가 오르는 구간은 중간중간 나타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오른 후 단기차익만 얻고 팔거나 단기 상투일 우려에 아예 진입조차 못하기도 한다.
저금리 기조가 굳어지면서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음에도 주식투자할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은 직전의 시장패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1986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장기 월봉차트상 코스피 흐름을 기술적지표인 이동평균수렴·확산지수(MACD) 오실레이터로 살펴보면 밀물구간과 썰물구간이 확인된다.
오실레이터 값이 플러스(빨간색)로 표시된 구간을 밀물구간, 오실레이터 값이 마이너스(파란색)로 표시된 구간을 썰물구간으로 보면 된다. 최근에는 밀물구간이 나타나는데 지난 3년간 반복된 일시적인 약한 밀물이 아닌 횡보 장세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나는 지속적이고 강력한 밀물이라는 견해도 대두된다.
만약 그렇다면 오실레이터의 빨간 기둥이 몇달 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과거 경험상 주식시장에서 유동성 장세의 물꼬를 트면서 큰 상승장을 만들어낸 것은 흔히 외국인이었다. 지난 2월4일부터 4월14일까지 두달 남짓한 기간 동안 외국인은 거래소에서 5조394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반면 개인은 1조8843억원어치, 기관은 3조81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KTB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한국증시에 밀물처럼 외국인 돈이 흘러든 것은 ‘달러케리+엔케리+유로케리 자금’의 동반 순유입 효과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연쇄적인 통화공급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가 완화된 것도 한몫했다.
◆외국인 주도 썰물 조심해야
지난달 한국에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된 국가는 미국, 스위스, 영국, 일본 순이다. ECB의 국채매입이 시행된 이후(3월9일) 신흥아시아 국가 중 특히 한국증시로 자금유입이 집중된 것이다.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Buy Korea)는 ▲유가 및 환율 수혜에 따른 실적회복 기대감 ▲달러 유동성 랠리(연준 QE) 소외에 따른 가격매력 ▲연준 금리인상 국면에서 가장 건전한 대외안정성 등이 대외적인 핵심배경이다.
국내에서는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완화되고 기준금리가 인하된 것이 증시로 자금이 들어오는 데 기여했다. 즉 대외·대내적 모두 증시로 돈이 밀물처럼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주식시장의 고객예탁금은 4월10일 기준 19조2319억원으로 이는 한달 전(17조1932억원)보다 12%, 두달 전(16조4400억원)보다 17%, 석달 전(15조6453억원)보다 23% 증가한 것이다.
일평균 거래대금은 전년대비 최대 40% 가까이 늘어난 9조원대에 달한다. 오를 때 거래대금이 늘면 대기매물이 잘 소화되고 손바뀜이 원활하게 일어나 앞으로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직은 증시로의 자금유입 흐름을 근본적으로 되돌릴 만한 뚜렷한 악재가 없는 상황이다.
간접투자시장인 펀드시장에도 뭉칫돈이 몰리면서 기준금리 인하 이후 한달 동안 9조5000억원이 순유입됐다. 머니마켓펀드(MMF)(4월9일 기준)는 한달 전에 비해 10조868억원 늘어난 102조3235억원으로, 종합자산관리계좌(CMA)는 1조3289억원 증가한 46조7835억원을 기록했다.
주식시장이 안정적인 상승을 지속하면 추가로 들어올 대기자금도 풍부한 셈이다. 밀물처럼 늘어나는 유동성만이 아니라 펀더멘털상으로도 긍정적이다. 상장기업들의 실적은 지난 2년 동안 발표 시점이 다가올 때마다 예상치가 하향조정됐는데 올 1분기 실적시즌은 다르다.
1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존재하는 226개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코스피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지난 2월1일 31조2588억원이었지만 4월13일에는 31조5762억원으로 늘어났다.
한국의 주가수익비율(PER)은 4월10일 기준 10.1배로 미국(17.3), 홍콩(16.5), 일본(15.3)보다 훨씬 낮고 개발도상국인 인도네시아(15.3), 태국(14.0), 대만(12.7), 중국(11.7)에 비해서도 낮다.
기업수익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는 가치투자 측면에서도 매력적인 요소다. 다만 현재 밀물 장세로 보이더라도 언젠간 썰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유동성 감소에 따른 버블 붕괴를 염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유동성이 축소되면 한국 외에도 강세장 흐름을 탄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시장의 자산버블이 꺼지고 강세장이 마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시장에서 빠져나와야 할까.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유럽 양적완화 정책이 성과를 나타내 유럽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지표가 2분기에 좋게 나오면 3분기쯤 코스피 고점이 나타나는지 여부를 관찰해도 된다.
그때까지는 적극적인 투자를 지속할 만하다. 기업실적 호전이 가시화돼 유동성 장세에서 실적 장세로 넘어간 뒤 빠져나와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좋은 시기와 안 좋은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수익 내기 유리할 때 열심히 벌어야 한다. 다만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거꾸로 타는 우는 범하지 말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