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는 신 회장이 FI들로부터 압박을 받는 모양새지만 실리를 따지면 상장보다 나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교보생명은 이사회의 입김이 유독 강한데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이사회에서 FI측 인사가 제외되기 때문에 신 회장 의결권이 강화될 수 있다.
풋옵션 역시 자금마련 방안이 문제지만 상장은 자금조달 부담이 더 크다. 교보생명은 시장여건이 우호적이지 않은 탓에 상장 의지가 약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FI들의 풋옵션 요구에 셈법이 복잡해졌다.
◆FI, 상장 지연에 풋옵션 행사 압박
2012년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AEP)가 당시 교보생명 지분 24%를 보유하고 있던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대우)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신창재 회장은 2015년 상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상장이 3년째 미뤄지면서 FI들은 지난달 신 회장에게 지분을 되사가라며 풋옵션 행사를 요구했다.
풋옵션 행사의 최대 쟁점은 교보생명의 지분가치다. 현재 추산되는 교보생명 지분가치는 5조~7조원으로 신 회장이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1조원 이상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자금조달 방안이 관건이다. 우선 대주주라는 특성상 교보생명 지분을 담보로 주식담보대출을 받아 교보생명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다른 FI를 확보해 풋옵션을 대신 행사토록 하거나 극단적으로 보유지분을 매각해 풋옵션을 행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상적으로 풋옵션을 행사했다고 가정하면 이사회에서 FI 측 인사는 배제된다. 그만큼 신 회장의 의사결정 권한이 강화된다는 것으로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교보생명 사외이사는 4명이며 이 중 2명이 외국인투자자(코세어·AEP 각 1명) 측 인사다.
교보생명은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중요사안을 결정할 때 이사회 결정을 따랐는데 신 회장 입김이 그리 강하게 발휘되지 못해 매번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 회장의 가장 큰 꿈 중 하나는 은행업 진출이다. 2012년과 2014년 우리은행 인수 기회가 있었지만 외부 요소로 인해 무산됐다.
2015년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참여를 놓고 이사회에서 검토했지만 경쟁심화 등으로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불참을 결정했다. 2016년에는 우리은행 과점주주 참여를 검토하다가 이사회에서 중단키로 했다. 2013년과 2015년에는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 인수를 추진했지만 경쟁사에 비해 낮은 가격을 써내면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인터넷보험시장 진출 시에는 자회사 설립과 온라인사업부 신설을 두고 외부 컨설팅을 받았는데 내부 검토에 더해 금융위원회 인가가 늦어지면서 진출시기가 2년이나 미뤄졌다. 당시 교보생명과 같은 업체에 컨설팅을 받은 A생보사는 시장을 선점하며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늘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교보생명은 전통적으로 이사회의 입김이 강한 대표적인 회사로 풋옵션 행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 신 회장의 의사결정 권한이 강화될 수 있다”며 “자금조달이 쉽지않은 만큼 FI들과 회사가치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이 상장을 미룬 이유는 상장 여건이 좋지 못하다는 것과 신 회장의 지분율 희석 우려 때문으로 알려졌다.
현재 신 회장(33.78%)을 비롯한 총수일가 지분율이 39.43%며 한국수출입은행과 우리사주를 포함하면 46.28%다. 이에 반해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이 53.36%로 절반을 넘는다.
상장 목적 중 하나가 자본조달인 만큼 신주 발행이 필수다. 신 회장이 보유지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발행신주 절반 이상을 확보해야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으므로 풋옵션보다 부담이 더 크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대응을 감안하면 최소 2조원에서 최대 5조원 규모의 자본조달이 필요한데 이를 감안하면 1조원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구주 발행은 자본확충에 해당이 안된다.
상장 과정에서 다른 FI를 확보하는 방안은 신 회장의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하고 자사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의결권을 되살릴 여지도 없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필요에 따라 우호세력에 매각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수단으로도 쓰이지만 교보생명은 이 카드마저 갖고 있지 못하다.
교보증권 매각을 통한 자본확충 방안도 거론되지만 교보생명이 보유한 교보증권 지분은 51.63%, 지분가치는 1600억~1700억원에 불과하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도 3000억원을 넘기기 어렵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생명보험주의 저평가, 지분율 희석 등을 이유로 교보생명의 상장 의지를 낮게 본다. 교보생명은 지난 8월 상장(IPO) 등 증자방안을 결정하기 위해 크레디트스위스(CS)와 NH투자증권 2곳을 주관사로 선정했다. 시장에서는 교보생명 덩치를 감안했을 때 상장을 위해서는 4~5개 증권사 선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는 만큼 신종자본증권 등 다른 자본확충 방안에 초점을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교보생명은 올 2분기 10억달러(1조1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추진했다가 시장금리 상승 등의 이유로 철회했다.
교보생명은 지난 9월 이사회에서 상장 추진과 관련해 주관사 2곳의 보고서가 나온 후에 다시 검토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의 상장 의지에 물음표가 달리자 FI들이 풋옵션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IB업계 관계자는 “풋옵션의 쟁점은 교보생명의 지분가치로 회사 간 문제가 아닌 주주 간 문제여서 가격 조율이 최대 관건”이라면서 “본격 상장을 추진할 경우 주관사를 추가 선정할 것으로 예상되며 구체적인 밸류에이션이 측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수년전부터 IFRS17 및 KICS 도입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공개(IPO)를 포함한 자본확충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IPO는 회사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의사결정사안이니만큼 시장상황, 규제환경 변화등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이사회를 통해 심도있게 논의해 결정해 나갈 것”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