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자에게 퇴직금을 많이 주면 10명이 퇴직할 때 젊은 사람 7명을 채용할 수 있다. 은행은 눈치 보지 말고 희망퇴직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올해도 은행권에 희망퇴직 한파가 불어올 전망이다. 은행이 비대면 금융거래 증가로 지점 통·폐합을 진행하는 가운데 정부의 청년일자리 압박까지 더해져 희망퇴직이 정례화되고 있다.
시중은행은 올 연말부터 임금피크제에 진입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 받을 예정이다. 희망퇴직은 은행원의 자발적 선택이지만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 압박에 휩쓸려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청년 고용 ‘역풍’에 수천명 퇴직
KB국민은행은 다음달 노사 협의를 거쳐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의 희망퇴직 규모를 확정하고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2015년부터 매년 희망퇴직을 받은 국민은행은 올 초에만 400명이 자리를 비웠다. 올해의 희망퇴직 규모와 시기는 미정이지만 200~300명이 짐을 쌀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머니S 매년 부지점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신한은행도 연말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올 초 700여명이 떠났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8월 만 40세·근속기간 만 15년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준정년 특별퇴직을 신청받아 약 200명을 내보냈다. KEB하나은행은 올 들어 첫 희망퇴직을 받은 만큼 연말 희망퇴직 가능성은 낮다. 지주회사 전환을 앞둔 우리은행은 내년에 희망퇴직을 실시할 계획이다. 올해는 지주회사 전환 후 자기자본비율 부담이 커져 숙련된 인력을 당분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해서다. 지난해 우리은행은 민영화 이후 희망퇴직을 시행하면서 특별퇴직금을 대폭 인상해 1000명 이상이 몰렸다. NH농협은행도 하반기에 희망퇴직을 시행할 계획이다. 올해 희망퇴직은 지난해 수준(530여명)이거나 이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취지와 달리 희망퇴직 규모에 비해 신규채용 규모가 작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신규채용에는 찬성하지만 대규모 채용은 부담이라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올 7월까지 우리은행 1020명, 신한은행 700여명, 농협은행 530여명, KB국민은행 400명, KEB하나은행 481명 등 5개 은행에서 3131여명이 희망퇴직으로 짐을 쌌다. 반면 5개 은행의 신규채용은 지난해 2175명에 그쳤다. 갈수록 은행창구와 같은 대면채널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자동화기기(ATM) 등 비대면채널 거래가 늘어 신규인력을 채용하기 어려워서다.
여기에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에 휩쓸려 근로자의 정년보장을 위해 도입한 임금피크제도의 의미도 퇴색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 연령까지 고용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임금을 차츰 줄여나가는 제도다. 임금을 덜 받더라도 고용기간을 늘려 시니어 은행원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는데 사실상 희망퇴직을 유도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여전히 은행에 중간관리자가 많은 항아리형 인력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문제도 제기된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신규인력을 고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민하지 않고 희망퇴직만 늘리면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무작정 인력을 내보낼 게 아니라 오랜 금융경험을 토대로 쌓은 노하우를 살려 재교육을 시행하는 등 전문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발족, 임금피크제 도마 위
정부는 금융권 노사가 일자리 창출 방안을 모색하자는 금융노조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마련했다. 과도한 희망퇴직을 반대하는 경노사위가 은행권의 희망퇴직 바람을 잠재울지 관심이 쏠린다.
금융노조는 경사노위 산하의 금융산업위원회를 지난 19일 발족하고 올해 은행권의 희망퇴직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노사위는 정책 집행기관이 아니지만 노사가 합의한 방안을 금융당국도 수용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희망퇴직 열기를 잠재울 임금피크제 진입시점 연장도 도마에 올랐다. 최근 은행권은 지주사 전환을 앞둔 우리은행을 제외한 KB국민·신한·KEB하나은행은 임단협을 이미 진행 중이거나 개시를 앞둔 상태다. 올 상반기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임금피크제 진입시점을 현행보다 1년 연장하되 지부 노사 간에 합의하도록 자율성을 뒀다.
다만 은행별 임금피크제 진입시점이 달라 노사 간 힘겨루기가 벌써부터 치열하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은 만 55세부터 임금피크제에 진입한다. 반면 SC제일은행과 부산은행 등 지방은행들은 임금피크제 진입 시점이 만 56세이고 농협은행, 기업은행, 한국씨티은행 등은 만 57세다.
노사가 임금피크제 진입을 연장하기로 합의하더라도 당장 내년부터 연장할지, 2020년부터 연장할지 정해야 한다. 임금피크제 진입을 늘리면 연도별 임금지급률도 바꿔야 한다. 예컨대 국민은행은 임금피크제에 돌입하면 5년간 총 265%를 지급하지만 KEB하나은행은 260%, 신한은행은 일반직의 경우 300%를 지급한다. 협상과정에 난항이 예상되면서 연말 은행권의 희망퇴직은 임금지급률, 보직여부 등을 둘러싸고 노사가 치열한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별로 상황이 달라 임금피크제 진입 시점은 그대로 두고 희망퇴직금만 높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올해는 희망퇴직에 주 52시간 도입, 임금피크제 도입 등 노사의 논쟁거리가 많아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8호(2018년 11월28일~12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