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A씨가 또래 여성 B씨를 칼로 수차례 찌른 ‘선릉역 칼부림’ 사건의 범행동기가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당초 게임을 통해 만난 두여성의 감정싸움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일부 보도와 달리 경찰은 A씨가 성별을 속인데 대해 B씨가 화를 낸 것이 결정적인 범행 동기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폭력사건 발생하면 일단 ‘게임 탓’
지난 13일 서울 강남 경찰서는 A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A씨는 이날 오전 2시 15분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선릉역 5번 출구에서 B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렀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등의 게임을 하던 두여성이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배틀그라운드와 서든어택은 모두 총을 사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FPS(TPS)장르로 게임의 폭력성 설명할 때 주로 등장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A씨가 B씨를 향해 흉기를 휘두른 원인은 따로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3년전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사이였다. A씨는 온라인 상에서 B씨에게 남자 행세를 해왔다. B씨가 만남을 요구했으나 A씨가 거절했고 둘은 연락이 소원해졌다. 이후 A씨는 B씨에게 만나서 이야기 하자며 다시 접근, 이날 3년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됐다.
A씨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된 B씨는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A씨가 준비해온 칼로 B씨의 등과 복부를 찔렀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일부 언론은 두사람이 게임을 통해 만났다는 사실을 부각하며 게임의 폭력성을 보도했다. 일부는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구체적인 게임의 명칭을 공개하며 게임업계를 코너로 몰았다. 하지만 14일 이같은 경찰 조사결과가 밝혀지면서 게임업계는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게임은 취미일 뿐”
게임과 폭력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쟁은 해묵은 주제다. 게임이 폭력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여러 연구결과를 토대로 게임과 폭력성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미국 심리학회(APA)는 2015년 보고서를 통해 “게임이 공격적인 행동을 증가시키는 한가지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계간지 ‘정신의학’도 2015년 “폭력적인 게임이 공격적인 생각과 분노를 증가시키고 감정이입 능력과 친사회적 행동을 감소시킨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0월 여성가족부 국정감사 자리에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언급하면서 “피의자는 이전에도 PC방을 방문해 5시간 이상 게임에 몰입했다”며 “게임이 폭력성을 높인다”는 논리를 폈다.
반면 게임이 폭력성을 키우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지난해 독일 하노버 의과대학은 ‘폭력적인 게임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하노버 의과대학에 따르면 ‘콜오브듀티’ 같은 폭력적인 게임을 몇년동안 매일 몇시간 이상 했던 게이머 15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로 촬영했지만 게임을 즐기지 않은 집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사법부도 1250명의 청소년과 500명 이상의 부모를 대상으로 게임과 폭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후 미국 사법부는 “게임을 적당히 즐기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이라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했을 경우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총기난사 범행을 저지른 조승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또 2014년 빌라노바 대학과 럿거스 대학 등에서 게임과 실제적인 폭력사건 발생률에 관한 연구 결과 발표를 통해 폭력적인 게임이 출시된 이후 오히려 범죄율이 낮아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선릉역 칼부림 사건을 두고 “우리 사회는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게임과 연관부터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번 선릉역 칼부림 사건도 이런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며 “전세계적으로 게임이 4차 산업혁명의 테스트베드로 각광받는데 반해 국내에서 여전히 게임은 학업과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절대 악’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게임은 단지 취미일 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