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의 전설 품은 애절한 아리랑 고개
| 아동산길에서 바라본 밀양강.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영남루에 오르다
| 밀양향교에 핀 개나리꽃.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영남루 앞에 섰다.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창연한 누각이 마음을 숙연히 가라앉혔다. 기둥이 우람하고 마루가 크고 넓어 100여명이 앉아도 넉넉해 보인다. 선인들은 밀양강을 바라보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을 것이리라. 밀양의 영남루는 조선의 3대 누각으로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위용이 대단하다.
낙동강 왼쪽의 큰 마을이라는 ‘강좌웅부’(江左雄府), 조령 이남의 제일 이름 높은 누각이라는 ‘교남명루’(嶠南名樓), 밀양강과 읍성이 한폭의 그림과 같다는 ‘강성여화’(江城如畵)란 글귀의 현판이 루(樓)의 명성을 더한다.
◆무봉사와 밀양읍성
| 무봉사 오르는 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무봉사는 보물 제493호인 석조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는데 광배와 좌대가 어우러져 원래부터 하나인 것 같으나 사실은 각자의 탄생이 다르다.
석가여래좌상은 영남사지(嶺南寺址)에 있던 것을 옮겨 모신 것으로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없었으며 근처에서 발굴된 광배를 붙이고 대좌를 새롭게 만들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으나 원래가 하나였던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무봉사를 지나 아동산(衙東山)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밀양강과 곁을 해서 지나는 동안 밀양아리랑이 입에 맴돌았다.
| 밀양읍성.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산은 높거나 크지 않았으나 읍성을 포함하고 있어서 적을 방비하기 위한 가파른 산을 잡아 성을 쌓았기에 외성으로 도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편한 길이었으나 읍성 동문으로 올라 갈 때는 숨이 차올라 헉헉거린다.
◆밀양향교와 밀성 손씨 고택
| 밀양향교 풍화루.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밀양향교에 정문인 풍화루(風化樓)에 도착했다. 풍화는 풍속교화(風俗敎化)의 준말로 인륜과 성현의 뜻을 밝혀 풍속을 교화하고 돈독하게 하는 공간이란 뜻이지만 봄기운 만연하고 꽃이 만발하니 봄바람 소소히 들어 이때쯤이면 공부는 저만치 놔두고 풍류를 즐겼을 법하다.
| 손병준 고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조선의 정원 월연정
| 월연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소나무 수향(樹香)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월연정(月淵亭)이다. 월연정은 월연대(月淵臺)와 살림집인 제헌(霽軒), 쌍경당(雙鏡堂)을 합해서 부른다.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강물 위에 비춰 떠있는 달이 아름다워 쌍경당이고 월연정일까. 담양의 소쇄원 못지않게 조선 정원의 청아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조선 중종 때 월연(月淵) 이태(李迨)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호를 따서 월연정을 지었다.
월연정을 지나 월연터널이 보인다. 경부선 철도로 사용되다가 1940년 복선화되면서 일반 도로로 이용되는 터널이다. 멀리 강 건너 마지막 목적지 금시당이다.
◆금시당, 백곡재 매화가 봄을 알리다
| 금시당과 벽곡재.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밀양의 봄소식은 금시당 매화나무에서 찾아야 한다. 450년 선비의 뜰인 금시당에서 200년 동안 매화는 향을 내려 봄소식을 알려왔다. 아직도 여전히 매화나무에는 봄이 가득했다. 곧 꽃잎에 봄을 싣고 산산이 비산해 봄의 절정을 알릴 것이다. 올 가을 450년 된 은행나무가 황금빛 단장을 할 때 다시 밀양을 찾아야겠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밀양아리랑)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밀양아리랑)
☞ 본 기사는 <머니S> 제586호(2019년 4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