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먼바다 섬여행 잔잔한 도내해 품은 거문도, 불탄봉 수놓은 동백 백도, 섬속의 또 다른 섬여행 백미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불탄봉 트레킹 코스에서 바라본 거문등대. /사진=박정웅 기자
여수에는 제법 먼섬이 있다. 페리 뱃길로는 삼산면의 거문도가 가장 멀다. 여수에서 고속페리로 2시간30분 거리다. 거문도는 남해 한가운데 섬이다. 거문도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여서도(전남 완도)와 추자도(제주)가 육지와 제주도를 가른다. 먼섬인 거문도에는 딸린 먼섬이 또 있다. 뱃길로 1시간 이상을 더 가야하는 백도다. 백도에 안 들렸다면 거문도여행은 헛것이다.
거문도 등대. 오른쪽 등대가 일제가 세운 남해 최초의 등대다.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도는 백도 등을 합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이룬다. 섬 속의 바다, 거문도의 ‘도내해’(島內海)는 먼바다에 있음에도 파도가 매우 잔잔하다. 삼산면의 소재지인 고도를 중심으로 도내해는 서도와 동도, 세 섬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어서다. 서도의 불탄봉에서 바라본 거문도 풍광은 아름답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동백이 온 섬을 붉게 물들인다. 거문도에는 또 제국주의가 할퀸 상처가 역력하다. 일본을 오가는 남해의 주요 항로에 놓인 까닭이다.
◆남해 먼바다, 아름다운 섬 ‘거문도’
거문도에 핀 동백꽃.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도 동백이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다. 영국군묘를 오르는 고도의 산책길이나 서도의 불탄봉, 그리고 거문등대에서 동백은 여행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벌써부터 모가지를 땅바닥에 내던진 성미 급한 동백도 있었다. 거문도의 동백꽃은 사시사철 푸른 아열대림 사이에서 붉은 빛을 더했다.
유림해변 인근에서 본 거문도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세개의 섬이 감싸는 거문도항은 천혜의 미항으로 꼽힌다. 세 섬이 먼바다의 바람을 막아준다. 또 세 섬은 성벽처럼 둘러쳐 마치 요새를 방불케 한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은 ‘거문도사건’을 통해 이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한때 거문도항은 그들의 제독 이름을 딴 ‘포트 해밀턴’이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이곳을 방어기지로 삼았다. 우리 민족을 착취해 만든 포대와 벙커가 섬 곳곳에 건재하다.
거문도 고도의 영국군묘.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도사건'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됐다는 테니스장을 가리키는 안내판. 거문초등학교 자리였다고 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거문도는 아픈 역사를 간직했음에도 아름다운 섬으로 빛난다. 거문도의 진면목은 서도의 불탄봉 트레일에서 확인된다. 북쪽으론 서도와 동도를 잇는 거문대교가, 동쪽으론 동도와 고도 방향의 방조제 같은 방파제가, 또 남쪽으론 고도와 서도를 잇는 삼호교가 한눈에 잡힌다. 날이 좋다면 제주도를 가까이 볼 수 있다. 불탄봉에는 걷기 좋은 트레일이 있다. 서도의 주산인 음달산(237m)에서 남해 최초의 등대인 거문등대가 있는 수월산(128m)을 잇는 코스다. 주요 기점은 불탄봉-비로봉(보로봉)-신선바위-목넘어(목넘이)-거문등대이며 전체 코스는 6㎞쯤이다.
삼호교에서 바라본 거문도 앞바다 여명. /사진=박정웅 기자
이중 목넘어-거문등대 약 1.5㎞ 구간은 거문도자연관찰로에 해당한다. 목넘어에서는 차도가 서도나 고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편안하게 복귀할 수 있다. 그 거리는 2㎞정도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걸어도 좋다. 중간에는 유림해변(거문도해수욕장)이 있다. 물론 콜택시를 호출해도 된다. 최근 개별여행객에게 희소식이 생겼다. 지난달 6일 거문도에 첫 육상 대중교통이 들어온 것. 여수의 공영버스가 거문도의 세 섬을 오간다. 버스는 거문등대로 이어지는 목넘어 방향 유림해변에도 선다. ◆동백꽃에 불났어요… 불탄봉 트레일
땅바닥에 떨어진 동백꽃. /사진=박정웅 기자
불탄봉 트레킹코스는 어디에서 시작할까. 여행객들은 대게 고도에서 삼호교를 건너 서도의 불탄봉을 찾는다. 삼호교에서 오른쪽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덕촌리사무소를 지난다. 도로에 불탄봉 이정표를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왼쪽 오솔길로 오르면 된다. 왼쪽으론 거문중학교다. 해안도로에서 불탄봉까지는 다소 가파른 길이다. 트레일을 오르는 내내 동백숲은 토끼굴을 이룬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등 뒤의 거문도 조망을 담아보자.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불탄봉 트레일. 일부 구간은 평평한 돌로 트레일을 만들어 마치 성밟기를 하듯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불탄봉 정상부터는 연봉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니 마음을 놔도 된다. 연봉과 연봉 사이를 잇는 일부 구간은 경사지나 험하지는 않다. 불탄봉 트레일은 성벽 위를 걷는 느낌을 갖게 한다. 반반한 구들장돌로 트레일을 ‘축조’한 듯해서다. 먼섬의 산꼭대기에 웬 구들장돌인가 싶지만 어쨌든 길은 마치 성 밟기를 하는 것처럼 편하다. 전망 포인트와 쉼터가 곳곳에 있어 언제든 쉬어가도 좋다. 불탄봉 지명은 산불에서 유래한다. 거문도 주민에 따르면 본래는 이름이 없었는데 산불이 난 뒤 불탄봉이라고 했다는 거다. 여기에다 하나를 더 붙이면 좋겠다. 붉은 동백꽃 때문에 불탄봉 아닌가 한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세 계절 내내 동백의 향연이니 말이다. 동백꽃을 피게 하는 조그마한 동박새를 마주친다. 그들의 청량한 울림에 일상의 먼지가 사라지는 듯하다.
억새가 장관을 이룬 불탄봉 트레일. /사진=박정웅 기자
억새군락도 불탄봉 볼거리 중 하나다. 하얀 억새는 푸른 바다를 양 옆에 거느린다. 푸른 아열대림 속에 핀 붉은 동백처럼 억새와 바다의 색감 조화가 인상적이다. 또 서쪽 트레일을 따라 이어지는 서쪽 해벽은 백도에 버금갈 정도로 아찔한 장관을 뽐낸다. 멀리 거문등대와 어우러진 해벽 풍광이 발걸음을 한참 붙든다.
거문등대가 있는 수월산과 서도는 목넘어로 연결된다. /사진=박정웅 기자
트레일의 막바지, 음달산을 내려오면 목넘어다. 계단길이 끊임없으니 주의하자. 수월산까진 갯바위 바닷길인 목넘어를 건넌다. 거문도자연관찰로인 목넘어-거문등대 1.5㎞ 코스가 펼쳐진다. 자연관찰로의 끝은 남해의 첫 등대인 거문등대다. 거문도 등대(거문등대)는 일제가 1905년 세웠다. 이곳에서 등대스테이를 할 수 있다. 단 가족에 한하며 사전 예약해야 한다. 등대 끝 관백정은 전망 포인트다. 거문도, 특히 서도는 등대여행의 꽃이다. 남단의 거문등대와 더불어 북단의 녹산등대도 찾아볼 만하다. ◆백도와 거문도 여행팁
백도의 기암 장관과 이를 담는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먼섬 거문도에선 백도(白島)를 꼭 들러야 한다. 백도를 뺀 거문도여행은 헛것이라는 얘기다. 백도는 고도의 삼호교 인근 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을 이용한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차례 운항하는데 예약자수에 따라 변동되니 사전에 꼭 확인하는 것이 좋다. 거문도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먼섬이다. 백도는 무인군도다. 지명은 인상적인 하얀 기암에서 비롯하는 듯하다. 지명에 붙은 또 다른 얘기가 있다. 바다에 솟은 바위를 세어보니 99개여서 일백 백(百)에서 하나(一)를 빼 백도(白島)라 했다는 것. 어쨌든 99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백도는 명승이다.
거문도의 별미인 장어전골. /사진=박정웅 기자
제철인 거문도의 은갈치. /사진=박정웅 기자
백도는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뉜다. 다만 섬 전체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제7호로 지정돼 출입할 수 없다. 상백도 수리섬의 무인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세워진 것이다. 일제는 백도의 하얀 바위에 시커먼 쇠말뚝을 박았다. 먼바다의 이름 없는 바위에까지 민족정기를 끊겠다는 만행이었다. 20년전 제거했지만 녹슨 쇳물의 흔적은 역력하다는 설명이다. 거문도로 가는 뱃길은 두곳에서 열린다. 전남 여수의 연안여객선터미널과 고흥의 녹동항이다. 여수에선 하루 두차례 고속페리가 뜨는데 거문도항까진 2시간30분 걸린다. 녹동항에서는 차도선이 오간다. 여수는 섬여행 활성화 차원에서 먼바다 페리 요금을 할인하다. 거문도행 페리가 그렇다. 올해 처음 시행했는데 기간은 지난 11월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