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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산유국 갈등 겹치며 가격 하락세 장기화

국제유가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주요 국가의 산업시설 폐쇄와 교역 감소로 글로벌 수요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산유국 간 패권다툼까지 겹치며 국제유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제유가 하락은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하락폭이 워낙 가파른 데다 수요 위축이 장기화되고 있어 산업계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정유업계 등 국제유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산업에는 실질적인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산업계 전방위 타격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1월 배럴당 최대 63.27달러까지 올랐던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지난 3월 말 20.29달러까지 떨어져 3분의1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두바이유 가격도 배럴당 최고 69.65달러에서 21.23달러로 수직하락했고 브렌트유 역시 68.91달러에서 22.74달러로 내려앉았다.

국제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받는 대표적인 국내 산업은 정유업이다.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입장에서 국제유가 떨어질 경우 단기적으로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은 가파른 하락세는 미리 사둔 원유재고의 가치를 떨어뜨려 손해를 야기한다.

더욱이 수요위축도 함께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 정제마진까지 폭락하고 있다. 아시아지역을 대표하는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3월 셋째주부터 4월 첫째주까지 3주 연속 마이너스(-) 1달러대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손실 합계가 수조원에 달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유가급락으로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가격도 대폭 낮아졌음에도 석유화학제품 가격의 동반하락으로 3월 수출액이 9%나 줄었다. 석유화학 대표제품인 에틸렌 마진은 2018년 하반기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으며 수요 증가분을 상회하는 미국, 아시아 등지의 공급확대 등 구조적인 공급과잉에 따라 당분간 마진 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다.
건설업계도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 통상적으로 국제유가 하락은 물류비용이나 아스팔트 가격이 하락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중동의 재정악화로 인한 해외건설 플랜트와 관련 수주가 줄어드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

특히 한국 건설사의 최대 해외사업 수주지역이었던 중동에서 수주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수주절벽이 가속화될 경우 올해 건설업계의 해외수주액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코로나19로 인한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재정여건 악화로 중동 발주가 지연될 가능성 존재한다”며 “코로나19 장기화될 경우 건설업계 영업활동은 물론 인력 수급, 조달 등 공사수행 전반에 악영향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수요 감소에 수혜 업종도 사라져

조선업계 역시 해양플랜트 발주 감소로 인한 타격이 우려된다. 2014~2016년 미국의 셰일가스에 대항하기 위해 사우디발 원유 증산이 이뤄지면서 유가가 크게 하락하자 글로벌 오일메이저사들이 해양플랜트 발주를 잇따라 취소하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막대한 타격을 입은 바 있다. 통상 해양플랜트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이상일 때 발주가 늘어나지만 현재는 3분의1토막 수준이라 사실상 추가적인 발주는 어려워 보인다.

재생에너지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국제유가 하락은 석탄 채굴 원가 하락으로 이어져 석탄발전의 단가를 낮출 수 있고 내연기관차의 유지비가 저렴해져 재생에너지보다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지난 2월 기준 경유(-11.4%), 나프타(-10.9%) 등 석탄 및 석유제품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7.2% 떨어졌다.

통상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수혜를 보는 것으로 알려진 운송업종도 이번에는 호재를 기대할 수 없다. 현재의 유가하락은 수요 위축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항공업계는 영업비의 25~30%를 유류비로 사용해 유가가 10% 내려갈 때마다 영업이익이 2.5% 개선되지만 현재 국경봉쇄로 이동이 차단돼 유가하락의 효과를 누릴 수 없다.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들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범준 기자
삼성KPMG 경제연구원은 “3월 3째주 기준 한국발 국제선 전체 운항편수는 2019년 대비 68.7% 감소했다”며 “운항편수뿐만 아니라 운항 편당 이용객수 역시 큰 폭으로 떨어져 항공사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해운과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선박유와 자동차용 경유·휘발유 등이 동반하락하고 있지만 반등효과가 사실상 전무하다. 해운업계는 글로벌 물동량이 줄어들고 있고 자동차업계는 글로벌 생산시설의 잇단 폐쇄와 판매량 급감으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국제유가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OPEC+가 감산에 합의하더라도 코로나19의 충격이 워낙 거세기 때문. 최근 CNBC방송은 사우디, 러시아, 미국 등이 신속히 감산에 나선다고 해도 코로나19로 발생한 수요 위축을 만회할 순 없을 것이라며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전망을 소개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0호(2020년 4월14~2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