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 설리(25·본명 최진리)와 구하라씨(28)가 극단적 선택으로 숨을 거둔데 이어 배우 오인혜씨(36), 걸그룹 출신 가수 A씨(22)가 지난달 연달아 극단적 선택을 실행에 옮기거나 시도하면서 정부가 연예인 자살 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설리, 구하라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난해 10월과 11월 '모방' 현상이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2021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연예인 지망생의 합숙 제한, 명예훼손 처벌 강화 등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배우 오인혜씨가 지난달 14일 자신의 집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지난해 설리, 구하라씨에 이어 또다시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이다.
걸그룹 출신 가수 A씨는 지난달 9일 투신을 시도하려다 다행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 구조대원들에게 구조됐다. 그는 앞서 연습생 때부터 팀 내에서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면증 등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A씨는 구조된 이후 관련 기사를 캡처한 후 "제발 악플 그만 달아 달라. 힘들다"고 호소했다.
연예인들은 얼굴이 알려지다보니 언론이나 대중의 비난에 쉽게 노출된다. A씨 뿐 아니라 설리 역시 과거 쏟아지는 악플과 루머로 연예계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연예인들의 극단적인 선택 자체도 안타깝지만 이들의 강력한 팬덤과 사회적 영향력은 '모방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현상을 낳는다. 실제 극단적 선택이 연이어 발생한 지난해 10~11월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했다. 보건복지부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사망이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한국매니지먼트연합,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연예인 대상 온라인 강의 영상과 매니저 대상 오프라인 교육자료를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잠정적으로 결정된 온라인 강의 내용은 Δ연예인의 마음건강 및 스트레스 관리 Δ정신건강 이상 신호 조기발견 Δ죽고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Δ회복탄력성 등이다. 매니저 대상 교육자료로 참가자용 워크북이나 강사용 매뉴얼도 만든다.
하지만 정부가 자살예방교육에서 나아가 구조적 문제 해결에는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예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을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아동·청소년기 연예인 지망생들이 집단 합숙 등으로 혹독한 경쟁에 놓이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신에서는 경쟁이 치열한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어린 10대 소년, 소녀들이 모여 서로를 죽고 죽여 한 명만 살아남는 '헝거게임'에 비유하기도 한다.
대학교에서 상담학을 가르치는 권영찬 한국연예인자살예방협회 상담소장은 아동·청소년기 연예인 지망생들이 집단 합숙 생활을 하면서 인성 교육이나 학교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라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존감이 부족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권 소장은 "우리나라는 어린 아이들을 뽑아서 몇 년간 집단 합숙 훈련을 시키는데 선진국에서는 아동학대라고 이를 금지한다"며 "소속사는 연습생들에게 스타로서의 꿈과 성공 지향적인 삶을 주입하는 데다 JYP를 제외한 일부 기획사들은 아이들의 인성 교육도 등한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습생들이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도태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고 막상 스타가 되더라도 허무함을 느낀다"며 "최소한 연습생들도 학교 수업은 충실히 참여하도록 하고 이들이 인기와 별개로 자기 자신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자존감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허위사실 유포자나 악플러 등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는 지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앞서 각 포털사이트는 연예 기사의 댓글을 금지했지만 미디어 자체가 다양해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 혹은 라이브 방송 등을 통해 여전히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비방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거짓을 적시한 명예훼손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지만 실제 소송에 가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7년에는 30대 B씨가 여자 연예인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 "결국 꽃뱀도 시집만 잘 가면 땡"라는 댓글을 달아 재판까지 갔지만 재판부는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또한, 권 소장은 "연예인들도 근로자로 보고 이들이 퇴근하면 주변 사람들도 그를 일반인으로 대해줘야 한다"며 "'요즘에 방송 왜 안 나오냐'는 식의 말도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에게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 연예인들은 소속사 입장에서 상품 가치가 높아 법정 근로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고 일이 끝나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자기 시간을 즐기기 어려우니 사실상 항상 업무의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며 "소속사도 연예인들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휴식 시간을 보장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