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국정농단 연루
전경련은 2016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에서 K스포츠·미르재단을 위한 기업의 후원금 모금을 주도해 ‘적폐’로 낙인찍히면서 위상이 급속도로 추락했다.연간 운영회비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잇따라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감원·임금 삭감·복지 축소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만 했다. 정부와 재계를 잇는 공식 창구로서의 기능도 대한상공회의소에 내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한상의를 재계의 맏형으로 인정했고 정권 출범 이후로도 대한상의를 공식적인 경제정책 파트너로 대우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비롯한 공식행사에서도 전경련은 줄줄이 배제돼 ‘전경련 패싱’이라는 말도 나왔다.
매년 열리는 신년회 등에도 초청받지 못했고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열린 정부와 경제계 간의 대화에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경련 패싱을 언급한 적은 없지만 “기업과 소통에 있어 특별히 전경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과거의 명성을 잃었지만 전경련은 내부 혁신을 통해 변화를 시도했다. 기존 경제·산업 본부의 정책연구기능은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이관해 한경연의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했고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적받았던 사회협력회계도 폐지했다. 위원회·협의회 등을 통한 소통 기능과 민간 경제외교 역할에 집중했다.
일정 부분 성과도 거뒀다. 촘촘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일본과 미국 재계와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강화한 게 대표적이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상황에서 전경련은 일본 재계와 교류를 지속하면서 민간 중심의 관계 복원에 앞장섰다.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된 상황에서 양국 기업인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한·일 기업인 특별입국 절차’에 합의한 것도 전경련의 공헌이 컸다. 제도 시행에 앞서 허창수 회장이 도미타 코지 주한 일본대사와 간담회를 통해 한·일 간 경제협력 및 기업인 출입국 간소화 방안 등을 논의했기 때문.
정권 교체를 앞둔 미국과의 소통도 확대했다. 온라인을 통해 한·미 재계 회의를 여는 등 협력을 강화했다. 올해 들어서도 새해 첫 활동으로 미 연방의회에 입성한 한국계 하원의원에 축하 서한을 보내며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한국계 의원이 적극 나서 줄 것과 한·미 경제 협력에 걸림돌이 되었던 무역확장법 232조의 개정에 적극 역할을 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한강의 기적 2.0’ 목표 정진
올해는 미국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본격화하는 만큼 전경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전경련은 한·미 경제 협력 강화에 더욱 정진한다는 각오다. 허창수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70년간 이어져 온 한·미 동맹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강화됐다”며 “지난 30년 이상 미국 상공회의소와 함께 민간 경제협력채널을 운영해 온 한국의 대표 경제단체로서 전경련이 양국의 경제협력 확대와 우호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와 함께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도 앞장선다는 각오다. 허 회장은 “올해는 전경련이 ‘창립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앞으로의 60년을 책임질 새로운 산업 발전에 이바지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한강의 기적 2.0 시대’가 열렸다는 찬사를 듣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다만 차기 회장 인선은 당면한 과제다. 전경련은 허 회장이 2011년부터 4연임을 통해 줄곧 회장직을 맡고 있다. 허 회장은 2017년과 2019년에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마땅한 후보가 나오지 않자 부득이하게 연임을 수락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설 후보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가 전경련을 대화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전경련 부회장단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이 포함돼 있으며 김승연 한화 회장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올해 경영복귀를 앞둔 김승연 회장이 차기 회장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김 회장은 2010년·2017년·2019년에도 전경련 회장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라며 “경영복귀와 함께 재계 단체의 수장을 맡아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