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6년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를 피해간 데 이어 또 다시 법망을 빠져나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폐질환과 인과관계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12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및 제조업체의 전직 임·직원들 총 11명에게도 각 무죄를 선고했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은 2002~2011년 클로로메틸아소티아졸리논(CMIT) 및 메틸아소티아졸리논(MIT) 등을 원료로 만든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고 기소됐다.
재판부는 "CMIT 및 MIT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생 혹은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피고인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사망·상해 사이의 인과관계 인정을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은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정에서는 시험과 연구결과에 참여한 교수와 전문가들이 출석해 CMIT 및 MIT 성분과 사망·상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증언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환경부 종합보고서는 추정을 제시한 일종의 의견서다. 이를 기초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였고 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면서도 "지난 2년동안 심리한 결과 CMIT 및 MIT 살균제는 유죄판결을 받은 PHMG 등과는 성분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재판부로선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적 원칙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833명… 가해자는 없다
'가습기 메이트'는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산업이 판매한 제품이다. 옥시 제품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냈다. 지난해 10월 기준 피해 신고자는 833명으로 이 중 12명이 사망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급성호흡부전으로 입원했던 임산부가 숨지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피해가 알려지면서 옥시와 옥시 제품을 판매한 대형마트들은 처벌받았다. 하지만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CMIT·MIT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아 이를 피해갔다. 이들 기업은 2016년 검찰에 고발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를 피했다.
검찰은 2018년 재수사에 착수했고 2년에 가까운 심리 끝에 지난달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베 금고 5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 결론을 냈다. 사실상 또 다시 증거 불충분으로 판단한 셈이다.
선고 직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와 일부 피해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해당 제품을 사용한 뒤 폐 손상·천식 등을 앓게 됐다는 조모씨는 "그 제품을 써 사망에 이르고, 지금까지 치료를 받으면서 투병을 하는 저희 피해자들은 과연 무슨 제품을 어떻게 썼단 말이냐"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