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B씨(30대)는 오는 3월 출산을 앞두고 막바지 출산 준비에 한창이다. B씨는 틈날 때마다 온라인 육아카페에 방문해 미리 준비해야 할 육아용품을 확인한다. 그는 세면대용 멀티수전과 아기 비데를 장만할 계획이다. '그것까지 필요할까' 싶었지만 아이 엉덩이를 씻길 때마다 좁은 세면대에서 낑낑대는 일이 줄어든다는 말에 구매를 결심했다.
'육아도 장비발'이라는 말이 육아하는 부모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장비로 아이를 기른다는 말이다. 육아 가전부터 각종 애플리케이션(앱)까지 '육아는 몸으로'라는 공식을 깨는 육아 아이템들이 엄마·아빠의 육아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이 같은 관심을 증명하듯 인스타그램에서 '육아는장비발' 해시태그가 75만개를 넘어섰다. '육아템'이나 '육아는아이템발' 등 이와 유사한 해시태그도 각각 약 380만개, 14만개에 달한다.
'0명대' 출산율에도 유아용품 시장은 성장가도
유아용품 시장의 성장은 매해 최저치를 경신하는 출산율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2018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유일 0명대(0.98명)를 기록한 이후 2020년 3분기 0.84명으로 더 떨어졌다.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총출생자 수가 27만명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30만명선이 무너졌다. 전년(2018년)보다 12%가량 감소한 수치다.
단순히 시장 규모만 커진 건 아니다. 이전에 없던 신박한 육아장비들이 아기가 '잘 먹고 자고 싸고 울도록' 부모의 육아를 거들고 있다.
아기가 잘 먹는 것은 부모의 가장 큰 바람이다. 수유는 가장 기본적인 일과지만 2~3시간마다 우는 아기를 달래며 적정한 온도와 농도의 우유를 때맞게 준비하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우유 타기 전쟁'에서 부모를 해방시킨 건 '분유 자동 제조기'다. 전 세계 자동 조유 기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미국 베이비 브레짜 제품이 대표적이다. 버튼을 누르면 7초 만에 아이가 음용 가능한 상태의 따뜻한 분유를 제공한다. 이 제품은 지난 2018년 한국 공식 판매 전부터 직구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분유 자동 제조기 이용자들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새벽에 한 사람만 일어나도 되니 다른 한 사람의 취침이 보장된다", "이게 있다고 안 피곤한 건 아니지만 반 이상의 피로가 사라지는 건 사실"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앞서 A씨가 구매한 제품은 엄마 아빠가 2분마다 밀어줘야 하는 수동이지만 바운서의 형태는 가지각색이다. 개월 수별로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조립형 바운서부터 고가의 전자동 바운서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부모의 '흔들기 노동'을 대신한다.
잘 먹는 것만큼 잘 싸는 것도 중요하다. 아기 건강과 직결되는 게 바로 아기의 변이다. 매일유업은 아기 변 사진을 통해 아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주는 '아기 똥 솔루션' 앱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녹변, 점액변 등 이상신호가 있을 때 아기 변을 사진 찍어 보내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아기 변 진단 전문가가 24시간 안에 솔루션을 내려준다.
해당 서비스를 경험한 이용자들은 "아기 변 상태 때문에 매번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고민이 많았는데 도움이 됐다", "평소와 다르게 찜찜한 변을 봤을 때 유용했다"고 평가한다.
'크라잉 베베' 관계자는 "이제 막 부모가 된 이들의 육아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아기 잠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아기 울음의 5가지 원인을 밝혀주는 울음분석기를 개발했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100일이 지난 아기 울음소리에 대해서는 분석 내용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5시간 고생할 일을 10분으로 단축시켜준다"며 똘똘한 육아템에 만족감을 보이는 이용자가 다수다.
엄마에겐 아직도 일상의 여유가 필요하다
'먹고 자고 싸고 우는' 양육 현장 곳곳에 육아장비가 적극적으로 투입된 건 일상의 여유가 절실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맞벌이·맞돌봄 문화 확산으로 효율성 있는 육아 노동의 필요성이 확대돼서다.육아장비업체들은 '엄마를 돕는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다. 아기 울음 분석 서비스는 "초보맘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다"고 홍보한다. 아기 변 진단 앱은 "엄마의 마음을 잘 아는 전문가가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주영애 성신여자대학교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육아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가 많아지고 정보수집에 능한 젊은 엄마 아빠가 그 정보를 선택하면서 육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했다"면서 "기업에서는 적절한 육아정보와 더불어 육아용품을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상반기 남성육아휴직 활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민간부문에서 육아휴직을 낸 남성은 전년 동기보다 34% 증가한 1만4857명이었다. 아빠 육아가 큰 폭으로 늘었지만 육아 휴직자 4명 중 1명만 아빠였던 셈.
엄마가 양육 책임자라는 인식도 여전하다. 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의 '육아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육아 휴직 시 회사 및 팀원들의 눈치가 보였다'고 답한 비율은 여성(48.7%)보다 남성(52.1%)이 약간 높았다. '육아 휴직을 아빠까지 쓰냐'는 시각이 작용한 탓이다.
육아 노동을 대체하는 육아 아이템에 대한 여성의 수요가 육아가전 등 이른바 '신박템'(신박한 아이템을 뜻하는 줄임말)의 성장을 견인하는 모습이다. 육아용품들은 육아 커뮤니티 등에서 '보육 도우미'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바쁜 엄마·아빠의 육아 노동을 돕고 있다.
다만 아직도 '육아=엄마'라는 사회적 인식이 짙은 점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 교수는 "육아가 편리해졌지만 남녀가 모두 경제활동을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만 여기는 인식을 재고해야 한다"며 "육아 아이템이 늘어난 것은 아빠의 육아 참여가 늘었다기보단 핵가족화 등에 따른 가족 구성원 감소로 갈수록 육아에 대한 간접 경험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어 "실버 라이프를 즐기려는 조부모의 증가로 예전처럼 손주를 대신 봐주는 대리 육아까지 감소했다"며 "초보 엄마·아빠가 넘쳐나자 이를 마케팅으로 활용한 기업들이 그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육아 아이템을 쏟아낸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