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배우 이채영에겐 '악역 전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다수의 작품에서 '빌런' 역할을 톡톡히 한 덕. 지난 10일 종영한 KBS 2TV '비밀의 남자'(극본 이정대, 연출 신창석)에서도 그의 활약이 돋보였다. 극에서 이채영은 욕심 많은 한유라로 열연했다. 가난한 집안 탓에 자신의 능력까지 폄하되는 것을 괴로워하던 한유라는 돈과 성공에 최고의 가치를 두며 그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점점 나락으로 빠지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이채영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점점 더 독해지는 한유라에 제대로 빙의했다. 신분상승을 꿈꾸며 부잣집 남자의 아이를 갖고, 이 일이 좌절되자 사고로 지능이 낮았던 이태풍(강은탁 분)을 이용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들의 목숨까지 거래에 동원하는 등 상상 초월인 한유라의 악행은 이채영의 리얼한 연기를 만나 잘 살아났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극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이채영에게도 한유라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인물의 도를 넘은 악행을 어떻게 표현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디테일을 살리면서 조금씩 캐릭터 만들어갔다. 연기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배우 본인에게도 큰 힘이 됐다. 모든 것을 쏟아냈기에 캐릭터를 보내며 시원섭섭하다는 그다. 여전히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이채영은 더욱 노력해 대체 불가한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채영과 만났다.
-'비밀의 남자'가 성황리에 종영했다. 반년 넘게 애정을 쏟은 작품이라 소감이 남다를 듯하다.
▶시원섭섭하다. 다른 작품을 할 땐 안 그랬는데 이번엔 마지막 촬영 날 기분이 묘하더라. 지난해 7월부터 거의 8개월 동안 촬영을 했다. 마지막 촬영 전날까지는 즐겁게 출근했는데, 다 마치는 날엔 기분이 다운됐다. 많이 섭섭하지만 이제 한유라를 보내줘야지 싶다. 잘 가, 한유라!
-극 중 한유라는 백혈병에 걸리며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서사가 잘 풀어졌다고 생각하는지.
▶한유라가 아들 민우를 힘들게 했던 백혈병에 걸리며 무너지는데, 제도적으로 벌을 주는 걸 넘어 하늘이 노해서 벌을 내린 진정한 권선징악이 아니었나 한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악인들이 사망하는 결말도 있지만 유라는 스스로 죽을 생각도 하지 않는, 끝까지 참회하지 않은 인물이다. 이 빌런의 마지막이 잘 표현된 듯하다.
-한유라는 서슴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캐릭터다. 역할을 소화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짓을 하는 악역이니 고민이 되더라. 그때 성경 모임에 가서 이런 작품을 하려고 하는데 고민이라고 했더니 '연기하는 건 배우 이채영이지 인간 이보영이 아니다'라고 말씀해주셔서 열심히 연기했다. 그런데 아들 민우에게 나쁜 짓을 하는 연기를 할 땐 무너지더라. 어른을 대상으로 악행을 벌일 땐 타당성을 찾고 방법론적인 생각을 했는데, 스스로 힘을 갖추지 못한 아이를 상대로 나쁜 일을 하는 건…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어떻게 연기할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대본 자체가 많이 셌는데,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어떻게 메울지 생각을 많이 하고 연기했다.
-그때처럼 한유라의 도 넘은 악행이 이해가지 않을 땐 어떤 식으로 풀어갔는지 궁금하다.
▶어떤 일을 벌일 때 동기부여가 중요하지 않나. 한유라에게 간절했던 건 돈과 성공,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처절해진 거다. 한유라가 살기 위해 발악하고 처세술과 능력을 활용해 상황을 모면하다는 전제를 갖고 연기했다.
-연기를 하면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한유라를 연기할 때 기존 악역과는 달리 리얼함을 최대한 살리고 싶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또 화를 내면서 물건을 어지를 때가 많지 않나. 그럴 때 분노를 다양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감독님께 상의드리면 텍스트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다 하라고 허락해주셔서 비슷해 보이지 않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기물 파손을 해도 욕하기보다는 좋아해 주셔서 신기했다.
-'빌런' 한유라와 배우 이채영의 닮은 점 혹은 다른 점은.
▶솔직하고 직설적인 면은 닮았다. 하지만 한유라처럼 세상을 살아가면 큰일 난다.(웃음) 또 나는 장난기가 많은 편인데 한유라는 항상 날이 서 있었다.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이를 피부로 느낀 적이 있나.
▶내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동료인 강은탁이 이야기해준 일이 있다. 스태프가 강은탁 옷에 묻은 것을 떼어내려고 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그분을 나로 착각하고 등짝을 때리셨다더라. '연기는 연기일 뿐 그런 사람은 아닌데'라고 생각했다.(웃음) 라이브톡이나 SNS 댓글, DM 등도 읽는데 많은 분들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좋다.
-극 속 관계와는 달리 실제론 '비밀의 남자' 출연 배우들과 사이가 좋아 보이더라.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밥도 먹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을 하면서는 일정이 바빠서 못 봤지만 끝난 뒤 서로 수고했다고 토닥여줬다.
-'비밀의 남자'가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장르의 편견이 없어진 계기가 된 작품. 어떤 장르의 작품이던, 어떤 역할을 맡던 스스로 역할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면 악역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비밀의 남자'는 방송 시간대가 일렀음에도 시청률 20%가 넘었고, 어린 친구들도 좋아해 화제성도 좋았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고. 그런 것들이 너무 감사했다. 배우가 사랑받을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건 연기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N인터뷰]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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