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쓸쓸한 패배자로 전락시키는 괴물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오늘도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하염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멈춰보려는 시도가 있다. 우리는 그 시도를 삼매(三昧), 집중, 몰입, 거듭남, 그리고 엑스터시(ecstasy)로 부른다. 몰입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인간을 괜찮은 동물로, 더 나아가 신적인 동물로 변모시키는 블랙홀이다. 이 영적인 블랙홀에 입장하면, 누구나 다시 태어나 어린아이가 된다.
누구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신의 삶을 가만히 살펴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거룩한 불만을 품어야 한다. 그 불만은 타인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지금-여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한탄이다.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주위 환경 탓으로 돌리고 누군가 나의 불행을 행복으로 전환시켜줄 방안을 기다린다. 그런 자신은 버릴 만하고 버려야 한다. 누추하고 구차스럽기 때문이다. 마치 세수나 양치질을 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누로 알게 모르게 달라붙은 먼지를 떨어내고, 부산스러운 칫솔질로 입안의 악취를 제거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은 그렇게 닦으면서, 자신의 정신이나 영혼은 수십 년 동안 그대로 방치한다. 정신적인 고양을 위해서 공부한다고들 하나, 사실은 자신의 재물, 명성, 그리고 조그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하는 척하는 것이다. 공부는 자기를 없애고, 예수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추한 십자가를 남들 앞에서 과감하게 짊어지는 용기다. 공부는, 자기 결점의 발견이며, 자기 개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깨달음이지, 자신하고 상관없는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구태의연한 자신의 삶이 언행을 통해 조금씩 수정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유효하다.
1세기 예수를 믿는 일부 지식인들은 <도마복음서>라는 책을 남겼다. 이 책은 114개의 예수 어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주에 읽은 어록 8번은 나에게 큰 물음과 깨우침을 주었다. 이 어록은 나에게 지금 반드시 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도마복음서>는 그 탈아와 몰입의 경지를 '천국'이라고 말한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어떤 상태다. 자신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원칙이 작동하고, 자신이 그 원칙을 지킬 때 몰려오는 행복이 충만한 경지다. 다음은 어록 8의 내용이다.
"사람이란 지혜로운 어부와 같다.
그(녀)는 자신의 그물을 바다에 던진다.
그는 작은 물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바다로부터 끌어올린다.
지혜로운 어부는 그들 가운데 훌륭하고 커다란 물고기를 발견한다.
그는 모든 작은 물고기를 바다 안으로 던진다.
그는 어려움이 없이 큰 물고기를 선택한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위 문장은 마치 복음서에 등장하는 천국에 관한 비유와 유사하다. <도마복음서>는 천국을 구체적인 장소에서 발견한다. 바로 첫 줄에 등장하는 사람이다. '사람'이란 콥트어 '로메'(rome)를 직역하자면 '여느 사람'이면서 '유일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우주와 일치하는 자아 즉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산스크리트어 문구를 빌리자면 '아함 브라흐마스미'(aham brahm?smi), 즉 '내가 우주다'란 의미다. 복음서가 천국이란 개념을 설명하면서, 그 천국의 위치에 대해 분명하지 말해주지 않고 있지만, <도마복음서>는 그 위치를 '인간 안'에서 찾는다. 인간이 바로 천국이다. 인간이 천국이기 위해 복음서에 등장한 비유로 선명하게 설명을 시도한다.
자신의 삶에서 천국을 구가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란 망망한 바다에 저인망을 던지는 어부와 같다. 인간은 하루라는 바다로 나가,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장소를 정해 저인망을 과감하게 던져야 한다. 타인의 배에 몰래 승선하지 말고, 자신의 배에 올라 힘차게 자신의 노를 저어야 한다. 그 저인망을 던지는 행위는 신속하고 강력해야 한다. 우물쭈물하고 자신이 없이 던진다면, 자신도 그물에 걸려 바다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인내는 적절하며 운명적인 순간을 낳는다. 그 순간이 되면 망이 묵직하게 느껴지면서 배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꿈틀거린다. 이때 어부는 그물을 끌어 올려 무슨 고기들이 잡혔는지 살펴본다. 이 단계까지는 지혜로운 어부나 어리석은 어부나,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다. 이다음에 하는 행위로 이들이 어떤 어부인가를 판별한다.
지혜로운 어부는 수많은 물고기 가운데, 언제나 가장 훌륭하고 커다란 물고기를 발견할 수 있는 기준과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는 훌륭하고 압도적으로 중요하고 거대한 물고기를 선택한다. 만일 그가 '훌륭함'의 기준이 없다면, 겉보기만 큰 물고기나, 더 나아가 욕심을 부려 모든 작은 물고기도 배로 올릴 것이다. 훌륭함이란 누구나 부러워하는 그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감동시켜 몰입시킬 유일한 한가지다. <도마복음서>에서 구원은 많은 물고기 가운데, 훌륭한 물고기 하나를 알아보는 앎이며 깨달음이다.
그런 깨달음이 있다면 삶이 순조롭다. 그는 '어려움이 없이' 훌륭한 물고기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의 선택은 오랜 묵상을 통한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결정이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그런 앎이 없다면, 자신이 버린 작은 물고기들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내가 오늘 발견해야 할 훌륭한 물고기는 무엇인가? 나는 작은 물고기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가? 나는 훌륭한 물고기와 하찮은, 버려도 되는 물고기를 구분할 지혜가 있는가? 나는 어려움이 없이 훌륭한 물고기 하나를 선택하여, 오늘을 영원한 지금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지혜로운 인생의 어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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