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혁 트레저데이터 한국지사장 /사진제공=트레저데이터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퇴하고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쳤다. 자신이 흥미를 느낀 학문을 파고들기 위해서다. 안정된 직장에서 요직에 중용돼 성과를 냈음에도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를 여러 번 했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에 도전해보기 위해서다.
혹자는 제멋대로에 끈기가 부족하다고 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이런 범상치 않은 이력을 남기면서도 꾸준히 성장을 이뤄나간 사람이 있다. 바로 고영혁 트레저데이터코리아 대표이사다.

게임을 좋아하는 나를 분석하다

“어렸을 적부터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감동적인 부분에서는 눈물까지 흘리곤 했죠. 다만 그렇게 감정이 격해진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내가 정확히 무엇에 왜 감격했는지 파악하려 들었다는 점이 남들과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 속에 제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진 한참 걸렸지만요.”


고 대표의 첫 번째 모험은 서울대 자퇴였다. 대학교 졸업반이 된 어느 날 그는 게임에서 하던 버릇처럼 자신을 분석해봤다. 입시 지도에 따라 수능점수에 맞춰서 택했던 주전공(전기공학)의 성적은 바닥이었다. 반면 컴퓨터공학과 같이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이수한 과목들은 최상위권이었다. 그대로 적당히 취업할 수도 있었지만 원치 않는 길이었다.

결국 부모의 반대까지 무릅쓰며 수능을 다시 봐서 새내기로 돌아갔다. 이때 그가 한 선택은 컴퓨터공학이 아니라 상경계열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석하고 기획하다가 그 과정 자체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발상을 전환한 그의 선택은 적중했다. 경제학·응용통계학·경영학을 셋 다 전공하면서 연세대 상경대를 수석 졸업했다.

나를 분석하다가 남을 분석하다

고 대표는 국내 게임과 IT업계 사관학교 역할을 했던 옛 게임사 마리텔레콤에서 대학 학점 연계 인턴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그 인연으로 4학년 재학 중에 NHN(한게임)에 입사해 정식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두 번째 모험의 출발이었다.


“게임 서비스나 사업을 분석하고 싶어 입사했는데 오자마자 ‘GNP+TF(태스크포스)’라는 임시조직으로 안내받아서 살짝 실망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GNP가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고스톱 앤드 포커’고 각 부서에서 최정예가 차출된 조직이었습니다. 당시 게임사 간 ‘맞고’ 경쟁이 치열했거든요.”

게임은 디지털 세상이고 이용자의 모든 행동을 기록으로 남기기 쉽다. 고 대표는 이 데이터를 분석해 감에 의존한 게 아닌 객관적·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갔다. 고 대표가 이 조직에 투입된 이유는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언제 판이 깨지는지 또 어떤 조건을 갖추면 더 달아오르는지 등을 게임 이용 패턴으로 파악했다. 이를 통해 ‘신 맞고’를 내놓으면서 빼앗겼던 ‘맞고’ 1위를 탈환했다.

이런 경험을 갖고 그가 본격적인 활약을 펼친 곳은 이커머스다. 인지과학을 배우고자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경제 사정 때문에 접고 G마켓에서 금융서비스 사업을 맡았다. 그는 이커머스도 이용자 행동이 기록된다는 점이 게임과 비슷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고객의 거래 데이터와 웹사이트 동선 데이터를 분석해 금융 상품 관련 실적을 극적으로 상승시켰다. 이 모든 게 아직 빅데이터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전인 2000년대에 이룬 일이다.

남을 분석하다가 세상을 분석하다

고 대표의 이력 중 가장 특이한 부분은 헤드헌터 경험이다. 개인 사업의 꿈을 갖게 되면서 정보와 인맥을 쌓고자 했다고 한다. 300명 이상의 커리어를 컨설팅하면서 그들이 삶의 전환점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파고들었다. 사람의 행동을 데이터뿐 아니라 정성적인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세 번째 모험인 1인 기업 ‘고넥터’는 이런 경험을 바탕에 둔 시도였다. 사람과 데이터를 연결하고 컨설팅하는 일이 적성에 꼭 맞았고 마케팅 기법인 ‘그로스해킹’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1인 기업 활동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이때 그에게 다가온 곳이 트레저데이터다.

“지금까지를 돌아봤을 때 정말 잘한 세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학교를 자퇴하고 새 전공으로 다시 출발한 것이고 두 번째는 아내를 카페에서 헌팅해 결혼까지 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트레저데이터에 합류한 것입니다.”

트레저데이터는 2011년 미국에서 설립된 클라우드 기반 빅데이터 서비스 전문업체다. 현재는 갤럭시와 아이폰의 두뇌(AP) 구조를 도맡아 그리는 세계 최대 팹리스(반도체 설계사) ARM이 모회사다. ‘고객 데이터 플랫폼’(CDP)을 앞세워 기업이 개인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간편하고 강력한 도구를 제공하는 동시에 고 대표의 컨설팅도 곁들여진다.

“제 경험에 비춰보면 데이터 분석은 특정 지식이나 기술을 깊게 익히기보다는 관련 역량을 두루 쌓는 편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기업에서도 데이터 분석을 소수의 전문인력에 맡겨두는 게 아니라 오피스 프로그램 쓰듯 구성원 모두가 수행하는 형태로 점차 바뀌어 갈 것입니다.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말이죠.”

고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석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꼭 분석을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후배들과 학생들이 분석적인 태도를 통해 성장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해결하고 싶은 것을 데이터로 분석해서 실천”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