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올 4월16일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신청한 인원은 7419명(생존 5766명, 사망 1653명)이다. 이 가운데 정부가 피해를 공식 인정한 지원 대상자는 4170명이며 이들 중 1005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실제 피해자와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참위와 고려대·서울대 등 보건 분야 연구진이 지난해 9월 한국환경보건학회 학술지에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노출 실태와 피해규모 추산’ 논문에 따르면 국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약 95만명(최소 87만명~최대 102만명), 사망자는 2만366명(최소 1만8801명~최대 2만1931명)으로 추정된다.
해당 논문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2만366명에는 천식·비염·간질성 폐질환 등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하는 일부 질환과 관련된 사망자만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외 질병으로 숨진 이들까지 합산할 경우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와 관련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희생자 2만명이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와 같은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불법 가습기 살균제 판매
이런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원인 중 하나였던 액체형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최근까지 시중에 판매돼 공분을 샀다. 사참위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원인이었던 액체형이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승인도 받지 않고 최근까지 판매됐다”고 밝혔다.
사참위는 올해 1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6종(액체형 3종, 고체형 2종, 가습기용 아로마방향제 1종)과 가습기용 생활화학제품 등을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수입하기 위해선 국립환경과학원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참위가 구매한 가습기 살균제들은 이 같은 승인 없이 불법으로 판매된 것이었다. 감독 책임이 있는 환경부가 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게 사참위 주장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해당 제품은 모두 해외직구 제품으로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것을 확인해 모두 유통 차단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온라인 유통 전 적법 제품 여부 확인을 온라인 유통사에게 의무화하는 등 불법제품의 시장 유통을 원천 차단하는 법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며 “온라인 유통 생활화학제품 관리 강화를 위해 사이버조사단 신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뿐 아니라 다른 화학제품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소독제 유해성이 논란을 일으키며 2차 피해 우려를 낳았다. 방역당국이 고시한 환경부 승인 방역제품들은 모두 실내용으로 물체 표면을 닦는 용도로만 사용해야 함에도 지자체 주도로 도로·학교·공공기관 등 무분별하게 공중 살포된 것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지난해 6월 “도로나 길가 등 공기 중에 소독제를 살포하는 것은 소독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고 건강·환경문제를 유발할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고 밝힌 이후에서야 소독제 오남용이 줄어들었다.
이 무렵에 한국소비자원은 기구 등의 살균소독제와 살균제(살생물제품)를 인체에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손소독제처럼 표시해 판매하고 있는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살균소독제는 식품조리기구·용기·포장에 사용해야 하고 살균제는 생활공간의 살균·소독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제품으로 인체에 직접 사용해선 안 된다. 게다가 손소독제는 의약외품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받지 않고 살균·소독 효과가 있는 것처럼 표시한 제품도 다수 발견됐다. 사참위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고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피해와 피해자들이 나올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내년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지난해 9월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독성이 판명된 화학물질을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해 생명 또는 건강상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그 유족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이 때문에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익찬 변호사(법무법인 일과사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경영책임자와 법인에 책임을 지우기 위한 법”이라며 “명목적인 권한 위임 뒤에 숨어서 실제로 권한을 행사하고 문제가 터지면 ‘꼬리자르기’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오민애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반복된 참사가 있었고 더 이상의 참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모여 시민재해를 포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이 진행돼 왔다”면서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반영하고 다른 규정과의 조화로운 적용·해석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충실한 내용을 담아 제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