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서민 울리는 그놈 목소리①] 어눌한 말투는 옛말, 시대 흐름에 맞춰 교묘해진 수법
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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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전화벨이 울려 퍼지고 있다. 서민을 노리는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만 7000억원으로 집계, 최근 3년간 발생 건수는 3만건을 웃돌았다. 과거 어눌한 말투를 사용하던 사기범들은 시대 흐름에 맞춰 진화된 수법으로 서민들의 귀를 현혹하고 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보이스피싱 무법지대'가 증가하자 대검찰청은 전국 검찰청에 보이스피싱 전담 검사를 지정하고 금융사들은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범죄 근절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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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
# “그걸 누가 당해? 했는데 당하는 건 한순간이더라구요.”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나지현씨(31)가 핸드폰 액정을 내보였다. “대출을 알아보던 참에 주거래은행에서 ‘정부특별신용보증대출’을 지원받을 수 있단 문자를 보고선 혹했죠. 전화 상담 역시 평범했어요.” 문자와 전화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안 건 통화 직후였다. 나씨는 “자칫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에 놀랐지만 더 속상했던 건 서민 상황을 이용해 이렇게까지 속인다는 거였어요.”라며 허탈해했다.
‘그놈 목소리’가 점점 정교하게 미끼를 던지고 있다. 과거엔 어눌한 말투로 경찰·검찰 등을 사칭해 개그 소재로 쓰이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다양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피해자 심리를 파고든다. 특히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약해진 서민 경제 상황을 이용해 시중은행 대출 상담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급증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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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눌한 말투에서 표준어에 각본까지 등장… 매년 피해규모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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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은 음성(Voice)·개인 정보(Private data)·낚시(Fishing)를 합성해 만들어진 단어다. 금융 기관이나 유명 전자 상거래 업체를 사칭해 불법적으로 개인의 금융 정보를 빼내 범죄에 사용하는 범법 행위다. 이제는 ‘대중적인’ 사기 수법이 된 보이스피싱이지만 국내에 상륙한 건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과거 일본과 대만을 중심으로 성행하다가 2006년 처음 국내에 보이스피싱 피해가 보고됐다.
사기 방식은 비슷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수법은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보이스피싱은 한국어가 모국어는 아닌 듯한 어눌한 말투와 목소리로 대표됐지만 최근엔 표준어와 전문용어를 사용하거나 두 명 이상이 수사관과 경찰관을 연기하는 등 더 교활하고 빈틈없는 모습으로 서민을 노리고 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에 피해 규모 역시 매년 커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건수는 ▲2018년 3만4132건 ▲2019년 3만7667건 ▲2020년 3만1681건 등이며 같은 기간 피해 금액은 약 ▲2018년 4040억원 ▲2019년 6398억원 ▲2020년 7000억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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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될 수 있고 누구나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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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범죄가 무서운 점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금융당국의 수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내 이름으로 전화가 왔었다”며 보이스피싱 경험담을 밝혔다.
그렇다고 모두 같은 덫에 발목이 잡히는 건 아니다. 피해자 연령에 따라 취약점이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2~3월 보이스피싱 피해구제 신청 등을 위해 금융회사 영업점에 방문한 피해자 620명을 대상으로 사기범의 접근 단계, 피해자 조종 및 자금 탈취 단계, 피해자의 사기 인지 단계 등 보이스피싱 범죄의 단계별 특징을 분석했다.
해당 분석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수법은 ▲가족·지인을 사칭한 경우가 36.1%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금융회사를 사칭한 저리 대출 빙자 29.8% ▲검찰 등을 사칭한 범죄 연루 빙자 20.5% 순으로 나타났다.
사기범이 검찰을 사칭해 접근할 땐 20대가 취약했다. 30~40대는 금융회사 사칭, 50대 이상은 딸이나 아들 등 가족 사칭에 속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접근매체는 문자가 45.9%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 ▲전화 32.5% ▲메신저 19.7% 순이었다.
피해 구제가 가능한 결정적 시간으로 여겨지는 30분을 훌쩍 넘어 사기를 인지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사기 인지 시간대는 피해를 당한 후 ▲30분~4시간 이내 38.4% ▲4시간~24시간 16.7% 등으로 나타났으며 2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19%로 집계됐다. 30분 이내에 사기를 당했다고 인지한 경우는 전체의 25.9%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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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은 특별신용보증 대출 대상자입니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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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이 정부가 보증하는 대출을 지원한다는 문자를 받았다면 이 역시 가짜다. 최근 시중은행이나 공공기관을 사칭해 ‘정부특례보증대출’을 지원하는 것처럼 꾸며 돈을 가로채는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가 100% 보증하는 대출 지원 대상이라거나 무보증 저금리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다고 유인하며 송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문구는 그럴싸해 보인다. 시중은행의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대출 대상자지만 현재 미접수돼 재안내한다”는 식으로 심리를 압박해 급전이 필요한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이 대출 상담을 빙자한 사기에 걸려들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사업자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협력해 각 통신사 명의로 가입자에게 ‘불법 대부 광고 스팸 문자 주의 안내’ 문자메시지를 순차 발송하고 알뜰폰 가입자에게는 요금고지서로 피해예방 정보를 안내할 예정이다.
나날이 진화하고 다양해지는 수법에 전문가는 최선의 예방책으로 ‘속지 않는 것’을 꼽는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보이스피싱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어려운 만큼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이후 금융당국과 경찰이 다각도로 대응책을 세워 예방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가 급증하는 점은 안타깝다”며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완벽한 범죄 근절은 어려워 무엇보다 개인 스스로 조심하고 예방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은 대면거래가 기본이다. 문자나 전화 등으로 개인정보를 공유하거나 금전을 거래하는 행위는 사전에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로 의심된다면 금융당국과 금융사에 직접 전화를 해 의뢰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