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교육은, 인간의 생김새처럼 저마다의 개성을 발견해 발휘시키는 자극이다. 그런 교육이 근대를 거쳐 대중화되면서,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도와주는 최신식 무기로 변질되었다. 교육은 성공이 달콤한 인생이라고 우리를 세뇌시켜왔다.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몰래 우위를 차지하여, 그들보다 더 많은 힘을 소유하는 것이 성공이다. 여기서 힘이란 대개 돈, 힘, 그리고 유명세다.
힘이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도록 조절하는 신이 있다. 로마인들은 그런 역할을 하는 여신을 '포르투나'(Fortuna)라고 불렀다.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동시에 공평의 여신이다. 그녀는 힘을 한 인간에게 집중하지 않도록, 때때로 공평하게 분배한다. 포르투나는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힘을 함부로, 무작위로 탈취하지 않는다. 그녀는 성공이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하도록, '오만'이란 결함을 함께 선물한다. 성공한 자는 자신이 부산물로 받은 오만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다.
한 인간이 최선을 발휘하여 이룰 수 있는 한계가 10이라고 가정하자.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여 그 10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인간에게 그런 신적인 유전자가 있다고 믿는다. 소수의 인간만, 그 경지에 도달했다.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들을 성인 혹은 천재라고 부른다.
그런 천재들의 비결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이자 문법이다. 그들은 자신의 소질을 타인의 소질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런 비교가 무식이고, 흉내는 자살행위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당에 한 송이 백합이 자태를 뽐낸다. 이 백합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유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당의 꽃들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 의연하게 변신한다. 운명의 여신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다. 꽃을 만개하고, 나비와 벌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허락한다. 시간이 되면 천상의 색을 담은 잎을 점점 자신이 돌아갈 땅의 빛깔로 변신시킨다. 그리고 급기야는 자신이 태어난 땅으로 아낌없이 돌아가, 그다음 봄에 찾아올 새로운 생명을 위한 옥토가 된다.
미국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자립'이란 에세이에서 '천재'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자신의 유일무이한 생각을 믿고, 자신의 은밀한 사적인 심정에서 옳은 것이, 인류에게도 옳다고 믿는 것, 이런 사람이 천재의 마음이다. 당신의 잠재된 확신을 말해보십시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인정하는 상식이 될 것입니다. 가장 내적인 것이, 적절한 시간에, 가장 외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이 지닌 천재성을 체계적으로 살해한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성공이라고 아이들을 세뇌시킨다. 특히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의 아이들은, 자신 가야만 하는 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다른 길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정도(正道)에서 이탈한다.
이 '이탈'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불렀다. '하마르티아'는 비극적 인간이 지닌 치명적인 결함이다. 1세기 복음서 저자들은, '하마르티아'를 '죄'로 번역했다. 그리스어 '하마르티아'는 원래 궁술에서 사용된 단어다. 그 의미는 '화살이 가야 할 그 길에서 이탈하여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가다'이다. '죄인'이란 종교에서 임의적으로 정해, 교리를 어기는 행위가 아니다. '죄'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구별된 길과 목적지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본연의 길로부터 이탈하는 어리석음이다. 남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이 하는 것을 자신의 소질로 착각하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모독이다.
오만한 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물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육체는 성장했지만, 정신은 유아다. 그런 사람이 한 나라의 리더가 되면, 그 나라 전체가 불행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훈련한 적이 없으면서, 자신만이 공동체를 개선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를 가지고 있다고 설교한다. 공정이나 정의와 같은 단어들을 '입'을 가지고 남들에게 설교하지만, 역부족이다. 공정과 정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카리스마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공정과 정의는 그의 걸음걸이, 손짓, 발짓, 눈길, 말하는 태도, 표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공정한 사람이 정직하고 공정한 사람이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급조될 수 없는 습관이다. 선진적인 인간은 새벽에 자신만의 구별된 공간에서 조용히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진실한 것을 아는가? 그 진실한 것을 용감하게 말하는가? 나는 그 진실을 일상의 태도에서 어김없이 드러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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