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①“하루만 맡겨도 이자 쏠쏠”… 덩치 커진 CMA 시장
②“은행에 고객 뺏길라” 증권사, CMA 금리 일제히 인상
③고액자산가·소액자산가 “모두에게 OK”… 랩어카운트 인기몰이

증시가 박스권에 머물면서 힘을 잃은 가운데 증권사의 랩어카운트로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직접투자 대신 투자자산을 일임하려는 수요가 많아진 영향이다.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고객과 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하고 대신 자산을 관리해주는 일임자산관리 서비스다. ‘싸다’라는 뜻의 랩(wrap)과 계좌를 뜻하는 어카운트(account)가 결합된 단어로 다양한 금융상품을 하나의 계좌로 ‘싸서’ 관리할 수 있는 종합자산관리계좌다. 전문가가 자산 구성부터 운용, 자문, 사후관리까지 총괄적으로 관리해 고액 자산가들의 전용 상품으로 여겨졌다.

랩어카운트는 월별로 자산운용보고서를 통해 운용내역을 투명하게 볼 수 있으며 실시간으로 포트폴리오 구성종목과 투자성과를 조회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9월 말 기준 국내 랩어카운트 운용 규모는 148조7201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3분기까지 16조1921억원이 늘어 지난해 연간 증가 규모(15조7313억원)를 넘어섰다. 

가입 고객 수도 지난해 말보다 10만명 가량 증가해 185만명을 웃돈다. 계약건수는 204만건으로 2003년 일임형 랩어카운트 판매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200만건을 넘겼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랩어카운트에 자금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최근 한국증시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직접투자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개별 종목에 화력을 쏟아부었던 개인투자자들은 펀드와 랩어카운트 등 간접투자 상품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변동성 장세가 이어지면서 불확실성 해소와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며 자산 운용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직접투자의 난이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간접 상품으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코로나19로 2차전지, 모빌리티 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간접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랩어카운트 가입문턱이 낮아진 점도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랩어카운트는 최소 가입금액이 5000만~1억원 정도로 일반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탓에 ‘부자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엔 1000만~3000만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다양한 상품군도 투자 심리를 자극한다. 투자 가능한 자산은 주식 뿐 아니라 펀드와 채권, ELS(주가연계증권) 등 파생상품, 부동산 관련 상품까지 다양하다. 채권이나 부동산 등 시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자산을 편입한다면 박스권 장이나 증시 변동성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증여랩, 2차전지, 저탄소, 메타버스 등으로 투자대상이 넓혀졌고 AI(인공지능) 로드어드바이저가 자동으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상품도 출시됐다.

“투자자 잡아라” 증권사 시장 공략

금융투자 업계에선 랩어카운트의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인상,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등으로 증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테크 스트레스’에 지친 투자자들의 발길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에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투자일임 계약 자산이 가장 많은 증권사는 NH투자증권(31조3662억2500만 원)이다. 뒤이어 ▲한국투자증권(20조3293억4300만원) ▲미래에셋증권(19조8392억3100만원) ▲하나금융투자(11조2431억9900만원) ▲교보증권(11조1845억1400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NH투자증권의 경우 전문투자자 자산이 24조6541억원을 기록했지만 일반투자자 자산 규모가 6조7120억원에 그쳐 상대적으로 낮았다. 일반투자자의 자금은 미래에셋증권(11조629억원)과 한국투자증권(7조522억원)이 NH투자증권을 월등하게 앞섰다.

랩어카운트가 인기를 끌자 증권사의 상품 출시가 봇물을 이뤘다. 올 들어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대다수의 증권사가 다양한 랩어카운트 상품을 내놨다. 

투자처와 컨셉트도 다양하다. 2차 전지, 헬스케어 등 유망 테마 국내외 ETF에 투자하거나 증여서비스와 랩을 결합시킨 증여랩, 차세대 혁신 기술 기업 등에 투자한다.

하나금융투자의 ‘증여랩’은 업계 최초 증여 서비스를 결합한 이색 특징을 기반으로 출시한 지 3개월 만에 1000억원 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증여하고 싶은 상품, 증여받고 싶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콘셉트다. 세계적으로 좋은 기업, 지속가능한 기업들의 주식으로 랩을 구성했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투자마이스터패밀리오피스랩’과 ‘한국투자금현물적립식랩’ 등 고객자산별 맞춤형 상품을 출시했다. 한국투자마이스터패밀리오피스랩은 최소가입금액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를, 한국투자금현물적립식랩은 최소가입금액 10만원 이상 소액투자자를 위한 랩어카운트다. 

삼성증권의 ‘올인원 랩’도 다양한 투자처를 강점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5개월 만에 2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키움증권은 자체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키우고(GO)’를 활용한 랩어카운트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상승장을 거쳐 올해 변동성이 심한 장세로 이어지면서 개별 종목에 대한 직접투자에 부담을 느낀 투자자들이 자산 운용을 일임하는 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국내외 주식 뿐만 아니라 펀드와 ETF, ELS, 부동산, 해외 대체투자 등 다양한 유형의 자산에 분산투자가 가능한 만큼 랩어카운트으로의 자금 유입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