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11월9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보수단체의 차량이 주차돼 있는 모습. 2021.11.9/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서울=뉴스1) 김진 기자 =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 생겼을 때 할머니들과 활동가들, 국민들이 많은 사랑을 주셔서 좋았어요. 일본 정부의 방해에도 해외에 진출하게 되면서 의미있는 일들도 해 나갔고요. 근데 요즘 수요시위에 가서 보면 보수단체들이 (일본 정부보다) 더 심하게 이야기를 해요. 그건 완전한 혐오이고, 너무나 심각해요. "
평화비(碑), 기림비, 동이… 다르지만 모두 평화의 소녀상을 부르는 이름이다. 2011년 12월14일 서울 황학동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 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하는 소녀상이 처음 세워진 이후 국내외로 뻗어나가며 여러 이름들이 생겼다.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세워진 소녀상은 국내 144기, 국외 16기(전시 제외)다.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 작가는 1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최근 수요시위 현장에 대한 우려로 답했다. 그는 "오히려 외국에서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데, 한국의 소녀상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심각하다"며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수요시위를 둘러싼 보수단체들의 반대집회가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상황 때문이다. 보수단체인 자유연대는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에 따라 집회가 재개된 11월3일부터 소녀상 앞 도로에 집회를 1순위 신고하며 장소를 선점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를 사기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보수단체들의 집회도 주변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수요시위 집회 장소는 이달 골목 끝까지 밀려났다. 1992년부터 이어진 수요시위는 지난해 여름에도 보수단체에 자리를 빼앗긴 적이 있지만 이렇게 장기간 소녀상 앞에서 열리지 못한 건 처음이다.

김 작가는 "수요시위를 무산시키고 수요시위를 주최하는 정의연을 무력화하고, 소녀상을 철거하는 게 일본 정부가 바라는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수요시위에 대한 김 작가 부부의 애정은 남다르다. 2011년 1월 일본대사관 인근을 지나던 중 우연히 시위 현장을 보게 된 게 시작이었다.

주최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연)을 찾아가 비석 제작을 맡게 됐고, 아내인 김서경 작가가 "할머니들의 증언대로 어린 소녀가 정문 앞에 앉아있다면 그들도 부끄럽지 않겠냐. 자꾸 부끄러워지다보면 반성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하며 지금의 소녀상이 탄생했다.

평화의 소녀상 작가인 (왼쪽부터)김서경·김운성 부부. 뉴스1 DB © News1 안은나 기자

김 작가는 "(해외에서는) 오히려 소녀상을 한국의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소녀상이 여성인권과 전쟁범죄 회복의 상징으로 자리잡으며 세계인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 글렌데일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은 소녀상에서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피해 역사를 본다"며 "이슬람국가(IS)에 전쟁범죄를 당해 독일로 망명 온 쿠르드족은 소녀상과 함께 IS의 잔혹함을 알리는 시위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의 사죄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이만 용서하라고 하는데 사죄를 해야 용서도 있는 법"이라며 "과거 피해 사실을 부끄러워 하셨던 할머니들께서 이제 인권운동가가 되어 당당하게 일본 정부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죄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소녀상의 향후 10년과 관련해서는 "학교나 직장 등 여러 집단과 사회에서 여성을 폄하하거나 상처를 주는 일들이 여전히 많이 일어나고, 여성혐오를 이용하려는 정치인들도 있다"며 "단순 설치에 그치지 않고 여성인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더 대중적이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캐릭터도 준비하기로 했다"며 "저들이 싸우려할 때 우리는 더 편안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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