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현 인천시수의사회 수의료봉사단 야나 단장 . / 사진=이한듬 기자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명 시대. 동물이 단순한 '애완'이 아닌 인생을 함께하는 '반려'의 존재가 되면서 관련 산업과 문화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동물권 강화에 대한 인식개선은 여전히 더디다. 사각지대에는 여전히 동물을 유기하거나 학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동물복지를 위한 사회·국가차원의 시스템 또한 미비한 상황이다. 인천시수의사회 수의료봉사단 야나(YANA, You Are Not Alone)를 이끌고 있는 오보현 단장(51)은 이처럼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동물들을 위해 수년째 수의료봉사에 힘을 쏟고 있다.

동물과 함께 자란 섬 소년, 수의사의 길로

오 단장은 26년째 동물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베테랑 수의사다. 오 단장에게 '수의사'라는 직업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는 "고향 제부도는 저의 어린 시절에는 시골 벽지의 섬이었다"며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이 나고 자란 환경이 중요한데 토끼, 오리, 소 등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 많다 보니 친구들보다는 동물들과 교감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볼 수 있었던 최고의 지식인도 수의사였다고 한다. 가축이 아프면 수의사가 치료를 위해 섬에 오고 동물들을 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수의사를 롤 모델로 삼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모두 동물에 있었다"며 "고민 없이 수의대에 진학했고 1996년 수의사 면허를 취득했다"고 전했다.


이후 오 단장은 수의과학검역원과 유명 사료회사 본부장을 거쳐 2005년부터 인천과 경기 시흥 지역에 동물병원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시수의사회 부회장, 인천시 동물복지위원회 위원 등 중책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 단장이 본격적으로 수의료봉사에 발을 들인 것은 부채의식 때문이다. 동물을 돌보며 생계를 꾸리는 수의사로서 수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을 보며 죄책감을 갖게 된 것. 그 무렵 개인적인 일로 아픔까지 겪으며 방황했는데 수의대에서 동문수학한 친구가 "수의료봉사로 삶을 환기하라"고 제안을 했다. 이를 계기로 오 단장은 수의료봉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엔 솔직히 주말에 나가기 싫었고 왜 오지까지 가야 하나 고민했었다"며 "하지만 수의료봉사가 진행 될수록 가슴 안에서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고 결국 봉사에 중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물들에게 봉사하면서 '나는 의미 있는 존재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제가 동물들을 살리는 동시에 동물들도 제 삶을 구원했다"고 말했다.


오 단장은 2020년 인천수의사회 회원들로 구성된 수의료봉사단체 '야나' 설립을 주도했다. 3년째 단장을 맡아 유기동물 등을 대상으로 응급치료, 예방접종, 중성화 수술 등 다양한 수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고양이 예방접종을 하고 있는 오보현 야나 단장. / 사진=뉴스1 최서윤 기자

수의료봉사 목표는 사람과 동물의 공존

야나의 활동은 비정기적이다. 수의사회에 사연이 접수되면 응급성과 진실성을 우선적으로 살펴 봉사활동 대상 지역을 정한다. 오 단장은 "봉사는 순수한 의도를 중요시하지 않으면 탈이 나기 때문에 금전 등의 목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원칙"이라며 "수의료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사전답사와 대상자 인터뷰 등을 거쳐 봉사지역을 선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보람됐던 순간으로 오 단장은 2020년 인천 옹진군 모도리에서 진행한 유기묘 중성화 수술을 꼽았다. 당시 모도리의 한 카페 사장이 유기묘를 하나둘 돌보기 시작했는데 개체 수가 100마리 이상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섬 주민들과 극한의 갈등이 빚어졌고 결국 야나에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오게 됐다.

오 단장을 비롯한 야나 회원들은 총 세 차례에 걸쳐 모도리를 방문해 급격하게 번식한 고양이들을 포획, 전 두수에 대한 중성화 수술을 마쳤다. 이후 모도리는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청정섬이 됐다.

오 단장은 동물에 대한 인식개선과 국가 차원의 시스템 개선이 갖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는 선진국이 됐다고 하는데 건물을 으리으리하게 짓고 잘 사는 게 선진국이 아니라 나약한 존재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게 선진국"이라며 "국격에 비해 뒤처진 동물권에 대한 인식, 동물에 대한 오해의 시선을 거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물복지 시스템에 대한 국가·지자체 조직이나 행정체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점도 꼬집었다. 동물복지 예산 확보와 정책 수립,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선 전담 부서나 행정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동물복지를 언제까지 구호단체나 수의료봉사단체의 선의에만 맡길 것인가"라며 "동물복지 전담 기관을 만들고, 이를 책임질 장을 선임하는 등 확실한 행정체계와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단장의 꿈은 수의료봉사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동물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수의료봉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며 "사람과 동물이 모두 품격 높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프로필
▲강원대 수의과대학 졸업 ▲수의과학검역원 병리진단과 파견근무 ▲대한제당㈜ 사료사업부 본부장 ▲삼산종합동물병원·호수동물병원 원장 ▲현 시흥시수의사회 회원 ▲현 인천시 수의사회 부회장 ▲현 인천시 동물복지위원회 위원 ▲현 인천시수의사회 의료봉사단 야나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