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시장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시장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S리포트]

"제 살 깎아 먹기, 출혈 경쟁인 거죠."
"현재 상황이 운용사는 물론 투자자한테도 좋을 건 없다고 봅니다."

최근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이 150조 규모로 확대되며 급성장하고 있지만 운용업계에선 여러 가지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다. 운용사 간 경쟁이 극단으로 치달으며 시장 건전성과 신뢰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운용사 간 상품 출시 경쟁에 불이 붙으며 상품 베끼기가 업계 전반에 만연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ETF 시장 인력난이 발생하며 운용사 간 인재 빼가기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너도나도 수수료 인하에 나서며 출혈 경쟁으로 인한 '제 살 깎아 먹기'가 되고 있는 판국이다.

유행 따라 '우수수'… 상품 베끼기 만연

시장에서는 비슷한 ETF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시장에서는 비슷한 ETF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국내에 상장된 ETF는 총 870개다. 2020년 말 기준 468개였던 ETF 종목 수는 2021년 말 533개, 2022년 말 666개, 2023년 말 812개로 증가했다.

그러나 커지는 규모에 비해 내실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용사마다 특색있는 상품을 내놓는 것이 아닌 유행에 따라 차별성 없는 상품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 지난해 증시 주도주로 2차전지가 떠오르자 ETF 시장에서도 2차전지를 테마로 하는 상품들이 쏟아졌다. 국내 상장된 16개의 2차전지 관련 ETF 중 7개가 지난해 상장한 ETF다.


삼성자산운용이 지난해 7월3일 'KODEX(코덱스) 2차전지 핵심소재' ETF를 내놓은 이후 같은 달 12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타이거) 2차전지 소재Fn' ETF를 출시했다. 이처럼 지난해 시장에서는 비슷한 테마의 2차전지 ETF가 연달아 출시됐다.

최근에는 AI(인공지능) 관련 종목이 증시를 이끌자 관련 ETF 라인업이 확대되고 있다. 국내 상장된 26개의 AI 관련 ETF 중 19개가 최근 1년 이내 상장됐다. 이 중 올해 연초 이후 상장된 ETF만 10개에 달한다.

최병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 시장은 AI와 반도체 등 특정 테마가 상승을 주도 중"이라며 "시장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지만 테마 ETF 투자 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뺏고 뺏기고" 운용사 인력 다툼 '과열'

운용사 간 ETF 인력 빼가기 경쟁이 가시화 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운용사 간 ETF 인력 빼가기 경쟁이 가시화 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TF 시장이 확대되며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운용사들의 다툼도 과열되고 있다. 특히 ETF 본부를 이끄는 본부장급 헤드와 상품운용 및 개발 등을 맡고 있는 운용역들에 대한 운용사 간 인력 빼가기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올해 KB자산운용은 ETF마케팅본부와 ETF운용본부를 ETF사업본부로 통합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사업본부장에 한국투자신탁운용의 김찬영 상무를 영입했다. 이 과정에서 ETF 마케팅본부를 이끌어 왔던 금정섭 본부장은 한화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ETF 운용본부를 이끌었던 차동호 이사는 키움증권으로 이동했다. KB자산운용의 운용역 6명이 각각 키움증권과 키움자산운용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에 KB자산운용은 공석을 채우기 위해 노아름 전 키움투자자산운용 팀장을 영입했다.

이처럼 운용사간 인력 빼가기 싸움이 가시화되자 운용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시장 규모가 커지며 ETF 관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운용사 내부에서는 신규 인력을 길러내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당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타 사 인력을 채용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운용사 간의 뺏고 뺏기기 경쟁"이라고 지적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수수료 출혈 경쟁 '비상'

운용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이 심화하며 출혈경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운용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이 심화하며 출혈경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시장점유율을 선점하기 위한 운용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5월 'KODEX 미국S&P500TR(총수익지수)' 등 해외 지수를 추종하는 ETF 4종의 총보수를 기존 연 0.05%에서 0.0401포인트 인하하며 업계 최저 수준인 0.0099%로 내렸다. 1억원 투자 시 연간 운용수수료가 9900원 수준까지 줄어든 셈이다.

같은 달 미래에셋운용도 CD(양도성예금증서) 1년물 금리를 추종하는 'TIGER(타이거) 1년CD(양도성예금증서)액티브(합성) ETF'의 총보수를 연 0.05%에서 0.0402%포인트 인하한 0.0098%로 내렸다. 이에 1억원 투자 시 연간 운용수수료는 9800원이 된다.

운용업계 공룡들의 수수료 인하 싸움에 후발주자들도 뛰어들었다. 한화자산운용은 'ARIRANG(아리랑) 200' 보수를 연 0.04%에서 0.017%로 낮췄다.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은 '마이다스 KoreaStock(코리아스톡)액티브' 총보수를 연 0.62%에서 0.29%로 내렸다. 신한자산운용도 'SOL(쏠) 미국 테크 TOP(톱)10'과 'SOL 미국 테크TOP10 인버스'의 총보수를 미국 빅테크 투자 ETF 중 최저 수준인 0.05%로 책정했다.

그러나 이같은 수수료 인하 경쟁은 운용업계의 치킨게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자본이 충분한 대형 운용사들의 출혈 경쟁에 밀려 중소형 운용사들이 도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들의 수수료 인하 경쟁에 중소형 운용사들은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라며 "결국 ETF 시장 전체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출혈 경쟁"이라고 일침했다.

금융당국, 해결방안 '고심'… 업계 자정 노력 필요

한국거래소는 ETF 베끼기 경쟁을 막기위해 신상품 보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는 ETF 베끼기 경쟁을 막기위해 신상품 보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운용사간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며 금융당국도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지난 2월 한국거래소는 상품 베끼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상품 보호제도'를 내놨다. 독창성 있는 ETF에 6개월간 독점 상장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금융투자협회는 올해 하반기 중 대형 운용사들을 중심으로 과도한 마케팅에 대한 점검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회원사들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하며 ETF 과열 경쟁에 대한 자정작용을 촉구하며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운용업계 스스로의 자정작용도 요구된다. 제 살 깎아 먹기 현상이 업계를 망치고 시장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운용사에게 수수료 인하와 같은 단기적 이벤트가 아닌 투자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좋은 상품을 시장에 내놓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산업 내 경쟁은 필연적일 수 없지만 ETF 점유율 경쟁이 투자자 입장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며 "제 살 깎아 먹기에 급급한 점유율 싸움이 아닌 소비자에게 적절한 투자 가이드를 제공해 주는 것이 운용사의 역할"이라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