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 등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청년들의 우울과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 청년들의 정신건강 악화를 방치할 경우 다른 세대까지 부정적 영향을 받아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정신적 침체를 겪게 될 우려가 존재한다. 청년 시절 나타난 우울·불안 등 정신건강 악화는 중장년층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다.
'51만' 우울·불안 청년… 부모세대도 영향권
청년들은 다른 세대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사례가 많다. 취업 준비 등으로 인해 다른 세대 대비 사회적 경쟁 강도가 높다는 게 이유로 거론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청년층(20~34세) 우울증·불안장애 환자 수는 총 51만946명으로 집계됐다. 전 세대인 유아·청소년층(5~19세, 13만4588명)보다 3696.6% 많다. 다음 세대인 중장년층(35~49세, 50만5870명)과 비교했을 땐 0.8% 많은 수준으로 수치상 비슷하지만 인구수를 고려하면 청년층이 더 취약하다는 평가다. 국가통계포털 연령별 추계인구를 살펴보면 2024년 청년층 인구는 998만8199명으로 중장년층(1114만9553명)보다 10.4% 적다.문제는 청년층의 정신건강 악화가 다른 세대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청년을 돌보는 부모세대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자녀를 지원하기 위해 금전적 부담을 느끼는 한편 우울·불안 등으로 힘들어하는 자녀를 보고 안쓰러움 등 정신적 괴로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취업 여성이 성인 자녀 돌봄 부담에 정신적으로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8년 발간된 '취업 여성의 미혼 성인 자녀 돌봄 부담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한세대학교 조옥선·백진아)에 따르면 취업 기혼여성이 성인 자녀 돌봄에 대해 부담감을 가질수록 내재된 우울 성향이 수면 위로 드러나 더욱 우울감에 빠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자녀 돌봄 부담감이 크면 배우자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일 만족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결과도 나왔다.
부모세대가 중년일 때 나타난 정신적 부담이 노년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청년층 정신건강 악화는 윗세대 전반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침체되는 일명 '회색빛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노년기에는 노화로 인해 신체기능이 저하되고 만성질환으로 삶의 질이 낮아져 기존에 있던 우울감이 심화하기 쉽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녀의 우울과 불안을 지켜보는 부모는 깊은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낀다"며 "'내가 뭘 잘못 키웠나'라는 자책은 부모 본인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좌절 경험이 반복되고 심한 우울이나 불안이 지속하면 윗세대가 돼서도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할 수 있다"며 "사회 전체가 청소년과 청년이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단단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의 우울·불안… 한때의 문제 아니다
성인 초기 노동시장 진입에 성공하지 못한 청년들은 심리적 좌절감과 자기효능감 저하 겪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나타날 여지도 존재한다. 이 문제는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다. 취업 경쟁이 강한 한국 사회를 이대로 방치하면 청년들은 중장년층이 돼서도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나이가 들어 새롭게 청년층이 된 이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총 8년 동안의 한국복지패널 종단자료를 통해 청년 1695명을 분석한 '청년층의 다양한 우울 변화유형 확인'(한남대학교 유창민)을 살펴보면 2012년 우울 점수가 우울증 의심 수준(16점)을 웃돈 '고수준 우울 유지집단'(22.25점, 25명·1.5%)은 2019년에도 우울 점수가 20.74점으로 계속해서 높게 나타났다. 해당 집단의 초기 우울 점수는 다른 집단의 우울 점수(15.09점, 4.18점, 2.79점)보다 높았던 게 특징이다. 우울 집단에 속할 확률은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았다.
시간이 지나도 부정적 상황이 이어지는 대표 사례는 일명 히키코모리로 불리는 고립·은둔 청년이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말 공개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60.5%는 20대부터 고립·은둔이 시작됐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직업 관련 어려움(24.1%)이었다. 고립 은둔 기간이 10년 이상인 비율은 6.1%에 달했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청년 A씨는 "10년 전도, 지금도 너무 많이 지쳐있다"며 "다시 일어날 필요와 의무를 크게 느끼지만 힘이 없다"고 토로했다.
기명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한 세대가 특정 시기에 겪은 트라우마는 인생의 여러 시기에 반복해서 등장한다"며 "지독한 실패·상실·두려움을 경험한 세대의 경우 다른 역경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정 경험은 한 세대에 각인되고 평생 지속하기도 하지만 세대를 넘어 이어지기도 한다"며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았다면 그 흔적은 사회 속에 전이되는 구조를 남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