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치솟은 국제유가가 국내 기름값에 본격 반영되기도 전부터 일선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경유 가격이 이례적으로 급등세를 보이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진다. 국제유가가 내릴 때는 국내 기름가격 인하가 굼벵이 걸음을 하는 반면 오를 때는 초고속으로 반영된다는 지적이다.
1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ℓ)당 1902.67원으로 1900원을 넘어섰다. 경유 가격은 ℓ당 1926.46원으로 휘발유 가격을 앞질렀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기 직전인 2월27일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ℓ당 각각 1692.58원, 1597.24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열흘 만에 200원 이상 치솟은 셈이다.
문제는 국제유가 상승분이 국내 기름 가격에 반영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통상 국제유가는 2~3주에 걸쳐 국내 기름값에 반영된다. 중동에서 원유를 매입해 한국으로 운송하는 데 20일 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25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배럴당 98.96달러, 94.77달러를 기록하며 100달러 수준에 근접했다. 이에 따라 국내 기름값은 이달 말까지 꾸준히 상승압력을 받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이 중동 지역 전역으로 확정되는 양상을 보이며 국제유가의 급격한 상승이 예상되자 미리 주유를 해두려는 '패닉 바잉'(공포 매수) 수요가 늘고, 여기에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단기간에 기름값이 급등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나온다. 국제유가가 하락할 시기에는 기름값 인하 체감 속도라 느린 반면 오를 때는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A씨는 "일주일도 안돼서 인근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일제히 1900원을 넘어섰다"며 "업무상 자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기름값이 너무 빠르게 올라 주유비용에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주유소의 담합이나 매점매석 행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하지만 주유소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정유사들이 휘발유와 경유 공급가격을 크게 올리면서 주유소 판매가격 상승 압력도 커졌다는 것이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주유소는 정유사나 대리점으로부터 석유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소매 유통업"이라며 "가격 상승의 1차 요인은 정유사 공급가격 인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조금이라도 쌀때 주유를 하려는 '패닉 바잉' 수오가 늘어나면서 재고 소진 속도가 빨라져 소비자들의 체감 상슥폭이 더욱 커졌을 것이란 해명이다.
정유사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항변한다. 국제 현물 시장 가격이 공급 가격에 반영되며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기름값이 이례적인 상승 랠리를 거듭하자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유가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단기간에 직접적으로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류 품목의 가중치는 46.6으로 농수산물보다도 높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유사와 주유소의 담합 등 불법 행위를 '대국민 중대범죄'로 규정하며 "그 대가가 얼마나 큰 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최근 정유4사를 만나 "일반 국민들은 석유 가격이 오를 땐 빨리, 내릴 땐 천천히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중동 상황으로 인한 국제 유가 상승 부담이 소비자들에게 일방적이고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투명하고 공정한 석유가격을 책정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