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부실채권(NPL) 시장이 올해도 8조원대 규모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건전성 관리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은행권이 대규모 부실채권 매각으로 연체율 관리에 나서는 사이, 저축은행과 보험사, 카드사 등 비은행권에서도 취약 차주 부실이 누적되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가 길어지면서 금융회사 전반의 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지는 흐름이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일회계법인 NPL센터는 올해 상반기 은행권 부실채권 매각 규모가 4조원 전후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상반기 전망대로 물량이 나올 경우 올해 연간 은행권 부실채권 매각 규모도 8조원 안팎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은행권 부실채권 매각 규모는 2020~2022년 4조원 미만에 머물렀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시행된 원금상환유예 등 금융지원 조치로 연체와 부실이 표면화되는 시점이 늦춰진 영향이다.
하지만 고금리와 경기 침체, 이자 상환 유예 종료 등이 겹치면서 2023년부터 매각 규모가 크게 늘었다. 실제 OPB(원부채권잔액) 기준 2022년 2조3700억원 수준이던 시장은 2023년 5조4000억원대로 두 배 이상 커졌다. 이후 2024년 8조3000억원, 2025년 8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부실채권 시장이 8조원대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못하는 배경에는 실물경기 부진이 있다. 증시는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내수 회복은 더디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 취약 차주의 빚 상환 부담도 여전히 크다. 금융당국의 건전성 관리 강화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금융회사들은 연체율과 NPL 비율을 낮추기 위해 부실채권 매각과 상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중저신용자·자영업자 부실에 금융권 긴장
은행권 안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의 부실채권 매각 증가가 눈에 띈다. 금융감독원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3개 인터넷전문은행이 지난해 매각한 대출채권은 총 2178억원으로 전년보다 17.0% 증가했다. 2023년 695억원과 비교하면 213.3% 늘었다.이는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와 관련이 깊다. 케이뱅크의 중저신용자 대출 중 매각 채권 비율은 2023년 0.36%에서 지난해 1.86%로 뛰었다. 같은 기간 토스뱅크는 0.90%에서 1.40%로, 카카오뱅크는 0.05%에서 0.22%로 올랐다. 포용금융 확대라는 정책 취지와 별개로 취약 차주 관리 부담이 은행권 건전성 관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황은 비은행권도 마찬가지다. 저축은행과 보험, 카드업권도 부실채권 증가와 장기 연체 확대에 고심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79개 저축은행 가운데 NPL 비율이 10%를 초과한 곳은 26곳으로 전체의 32.9%에 달했다.
NPL 비율은 전체 대출채권 가운데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돌려받기 어려운 대출이 많다는 의미다. 저축은행업권 평균 NPL 비율도 8.6%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보험권에서도 NPL 비율이 올랐다. 올해 3월 말 기준 보험회사 대출채권 연체율은 0.82%로 전분기보다 0.02%포인트 낮아졌다. 다만 NPL 비율은 1.13%로 0.10%포인트 상승했다. 카드업권 역시 지난해 말 기준 6개월 이상 장기 연체액이 4709억원으로 전년보다 83.9% 급증했다.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매각가율 뚝…부실 정리 비용 커진다
부실 지표가 악화되면 금융회사는 대손충당금을 더 쌓거나 연체채권을 상각·매각해 건전성 지표를 관리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손실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특히 매각 방식으로 부실채권이 시장에 넘어가면 차주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연체채권을 정리한 것이지만, 채권자가 바뀐 차주는 더 강한 추심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3개 인터넷전문은행이 매각한 대출채권 가운데 1173억원, 53.9%가 대부업체와 유동화전문회사에 팔렸다.
부실채권을 팔 때 제값을 받기 어려워진 점도 부담이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은행권 부실채권 평균 매각가율은 2023년 87.3%에서 2024년 79.3%, 2025년 70.7%로 하락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부실채권을 정리하더라도 낮은 가격에 팔수록 손실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실채권 매각은 금융회사 입장에서 건전성 지표를 관리하는 수단이지만, 부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 금융사는 낮은 가격에 채권을 정리해야 하고, 차주는 더 강한 추심 부담에 놓일 수 있어 시장 관리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