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회장 연임과 장기집권 문제를 넘어 은행장 선임 절차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요 은행장은 금융지주 내 최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이자 사실상 그룹 내 '2인자'로 꼽히지만, 은행별 지배구조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은행장 후보 추천의 출발점은 여전히 금융지주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도 올 하반기 금융지주 회장뿐 아니라 은행장 선임 절차까지 지배구조 개선 과제로 들여다보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은행장 인사 역시 당국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2025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각 은행은 은행장 후보를 검증·추천하는 은행 내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절차는 금융지주 내 자회사 CEO 추천기구가 은행장 후보를 정하면 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 또는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이를 검증해 주주총회에 올리는 방식에 가깝다.
KB국민은행은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를 별도로 운영한다. 국민은행 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는 KB금융지주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선정한 은행장 후보를 심사해 주주총회에 추천하는 역할을 맡는다.
신한은행도 지주 중심의 후보 추천 구조가 확인된다. 신한은행 지배구조 보고서에 따르면 신한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지주회사의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은행장 후보자에 대해 관계 법규와 지배구조 내부규범에서 정한 자격기준 적합 여부 등을 자체 검증 절차를 거쳐 주주총회에 추천한다.
우리은행은 최고경영자 경영승계 관련 전반 사항을 우리금융지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수행한다. 지주의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은행장 후보자에 대해 우리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관계 법규, 자격기준 적합 여부를 심사해 후보자를 추천하면 이사회의 후보 확정 결의를 거쳐 주주총회의 결의로 최종 선임하게 된다.
하나은행 역시 하나금융지주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은행장 후보 추천의 핵심 축이다. 하나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경영승계절차 개시 때 후보자 자격기준과 평가 절차, 하나금융지주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 후보군에 추천할 대상을 그룹임추위에 전달한다. 이후 하나은행 임추위는 하나금융지주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대표이사 은행장 후보자에 대해 관련 법규상 자격기준과 자질·역량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주주총회에 추천하고, 주주총회 결의로 은행장을 선임하는 구조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모두 은행 내 임추위 또는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은행장 후보를 추천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 후보 추천의 1차 권한은 금융지주 내 자회사 CEO 추천기구에 집중돼 있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은행 임추위가 독자적으로 후보를 발굴하기보다 지주가 추천한 후보의 자격요건과 적합성을 사후 검증하는 절차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금융당국이 주시해온 지배구조 쟁점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은 2023년 마련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서 CEO 선임 및 경영승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부족을 국내 은행권 지배구조의 주요 한계로 지적했다.
금감원은 당시 국내 은행권의 CEO 선임 절차에 대해 형식적인 승계계획은 마련돼 있지만 후보군 관리부터 최종 선정까지를 아우르는 종합적 승계계획이 부족하다고 봤다. 승계절차 개시 시점, 평가기준, 후보군 압축 방식 등 중요 사항이 충분히 문서화되지 않아 선임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담겼다.
후보 검증 기간과 방식도 미흡한 영역으로 제시됐다. 금감원은 당시 국내 8개 은행지주의 CEO 선임·연임 사례를 분석한 결과 승계절차 개시 후 최종 후보 결정까지 평균 45일에 그쳤고, 숏리스트 확정부터 최종 후보 결정까지는 평균 11일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숏리스트 후보에 대한 평가도 대부분 대면평가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대체로 1회의 인터뷰나 발표에 그쳤다고 봤다.
특히 자회사인 은행장 선임과 관련해 지주 이사회와 자회사인 은행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이 불명확하다고 짚었다. 대부분 금융지주가 자회사 CEO 후보 추천위원회를 운영하는 상황에서, 법상 기구인 은행 임추위가 사실상 지주가 선정한 단일 후보를 사후 추인하는 데 그치는 등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당국의 시선도 회장 선임 절차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올 하반기 지주 회장 선임뿐 아니라 행장 선임 관련 절차도 다수 예정돼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 관련 모범규준뿐 아니라 법률 개정안을 다 망라할 과제"라고 말했다. 금융지주 회장 인사뿐 아니라 은행장 인사까지 지배구조 개선 논의의 직접적인 점검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올해 말 주요 시중은행장 임기가 한꺼번에 만료되는 점도 당국의 문제의식에 힘을 싣는다. 은행장 인사는 그동안 금융지주 회장의 경영 구상을 실행할 인물을 낙점하는 '회장픽'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모범규준을 넘어 법률 개정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경우 은행장 인사 역시 회장 의중만으로 정리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회장 선임 절차에만 국한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며 "앞으로 은행장 후보 추천과 검증 과정에서도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더 분명히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