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도 내년 2월 토큰증권 시장이 열리는 가운데 활성화 관건은 부동산·미술품·IP·선박 같은 '비정형증권'에 있다는 시각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내년 2월 한국서도 법제화를 통한 '토큰증권' 시장이 열린다. 업계에서는 시장 형성 초기 성공 관건은 주식·채권·펀드 등으로 구성된 '정형증권' 보다 부동산·미술품·IP(지식재산권)·선박 같은 '비정형증권'의 안착이 중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서 같은 날 두 개의 화두 던진 '토큰증권'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주식을 블록체인에 올린 '토큰화 증권'이 같은 날 서로 다른 두 방식으로 등장했다. 온도파이낸스(Ondo Finance)는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코어 S&P500 ETF(상장지수펀드)인 IVV와 마이크론 주식을 기초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시큐리타이즈(Securitize)는 이 회사 주식 자체를 토큰증권으로 선보였다.

두 회사 모두 "미국 규제 안에서 (토큰증권을)구현했다"고 밝혔지만 투자자가 갖는 권리는 서로 다르다. 주식 같은 정형증권의 토큰화가 아직 하나의 표준으로 수렴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방식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 초기 단계임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꼽힌다.


주식·채권 같은 증권의 권리를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발행·유통하는 것이 토큰증권이다. 토큰증권은 대상 자산에 따라 '정형증권·비정형증권'으로 나뉜다.

정형증권은 이미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채권·펀드 같은 형태이고 비정형증권은 부동산·미술품·IP·선박처럼 그동안 개인이 쪼개어 투자하기 어려웠던 자산을 증권으로 만든 신종증권이다. 최근 미국에서 등장한 토큰증권은 정형증권을 블록체인에 올린 사례다.

온도파이낸스의 방식은 '수탁형'이다. 기초가 되는 ETF와 주식은 기존 보관 체계 안에 그대로 두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된 관리기관이 그 증권에 대한 '권리'를 표시하는 토큰을 1대1로 발행한다. 투자자가 손에 쥐는 것은 주식 자체가 아닌 해당 주식에 대한 권리다.


증권사 계좌로 주식을 보유할 때 실제 주권이 아니라 '증권사에 대한 청구권'을 갖는 것과 같은 구조다. 보관 기관이 파산하면 토큰 보유자도 다른 간접 보유자와 마찬가지 파산 절차 안에서 권리를 보장받는다.
한국서도 내년 2월 토큰증권 시장이 열리는 가운데 활성화 관건은 '비정형증권'에 있다는 업계 진단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시큐리타이즈의 방식은 '발행사 주도형'이다. NYSE에 상장된 자기 회사 주식을 발행사가 직접 토큰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토큰 보유자는 이 회사 주주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

다만 해당 방식도 완결형은 아니다. 토큰 접근이 발행사 규제 플랫폼을 통한 적격 투자자로 제한돼 있어 주주 권리는 명확하지만 접근성은 오히려 온도파이낸스 보다 좁다는 평가다. 결제 방식도 정규장 시간에는 기존 SEC 규정을 따르고 장 마감 뒤에는 별도의 자동시장조성 방식을 쓰는 이원 구조라 아직 하나로 통합되지 않았다.

이번 사례는 시큐리타이즈가 자기 주식을 스스로 토큰화한 첫 사례이며 해당 방식이 다른 상장사로 확산하려면 해당 기업이 직접 나서야 하지만 아직 이 모델을 택한 상장사는 없다.

미국 규제당국도 어느 방식을 표준으로 할지 정하지 못했다. 온도파이낸스가 등록한 관리기관에 대한 감독은 기록 관리에는 미치지만 토큰을 찍어내는 행위 자체까지 포괄하지는 않는다.

온도파이낸스의 상품이 정작 미국 투자자에게는 아직 팔리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런 공백을 보여준다. 시큐리타이즈 역시 이번 사례가 다른 상장사들이 반복해 채택할 수 있는 표준 절차로 이어질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화려한 등장으로 세계시장에 서로 다른 형식의 토큰증권 화두를 던졌지만 이면에 두 모델 모두 정리되지 않은 공백을 안고 있다는 평가다.

"법·인프라 갖춰진 '비정형'이 한국 시장 성공 방정식"

한국의 토큰증권 시장도 내년 2월 본격적으로 열린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토큰증권 관련 하위법규 개정안과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 5월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회의에서는 주식·채권·머니마켓펀드(MMF) 같은 정형증권 토큰화에 대해 해외 사례를 참고한 로드맵을 만들기로 했다. 다만 한꺼번에 모든 시스템을 바꾸면 기존 제도·인프라와 부딪힐 수 있어 단계적으로 가겠다는 방향이 설정됐다.

정형증권이 아직 표준을 만들어가는 단계라면 부동산·미술품·IP·선박 같은 실물자산 기반의 비정형증권은 내년 2월4일 법 시행과 함께 곧바로 시장이 열린다. 지난 1월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고 2월에는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도 끝났다. 법제화는 마무리됐고 하위 법규 설계만 남은 상황이다. 비정형증권이 한국 토큰증권시장의 맞춤형으로 언급되는 이유다.

금융위는 관련 법 통과 당시 해당 취지에 대해 "중소기업·소상공인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증권화해 자본시장을 통한 사업자금 조달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정책 방향의 첫머리로 "다양성과 확장성을 갖춘 디지털 혁신금융 생태계 조성"을 꼽았다. 음원·예술품·축산·부동산을 예로 들며 제도의 무게중심이 애초에 주식 같은 정형증권이 아닌 비정형증권에 있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에서는 법·인프라가 갖춰진 부동산·미술품·IP·선박과 같은 비정형증권을 통해 발행·유통 경험을 쌓는 것이 토큰증권 시장 안착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리플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토큰화된 실물자산 시장은 2033년까지 18조9000억달러(약 2경8456조원)로 성장한다. 국내에서도 2030년 367조원 규모의 시장 형성이 전망된다.

비정형증권 중에서도 특허권이 가장 주목받는다. 특허 사용료(라이선싱 로열티)는 계약에 따라 들어와 현금흐름을 가늠하기 쉬운 데다 여러 건을 묶으면 개별 건물 가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부동산과 달리 변동성도 낮출 수 있어서다. 바이셀스탠다드가 IP 전문기업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와 특허 사용료 기반 상품을 준비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특허는 기술 기업의 핵심 자산이지만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는 이를 투자 시장에 연결하는 수단이 제한적이었다. 부동산은 리츠, 채권은 유동화증권으로 투자자에 접근이 가능하지만 무형자산인 특허는 그에 상응하는 유통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셀스탠다드는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기초자산으로 한 토큰증권 상품 개발에 착수했다.

바이셀스탠다드 관계자는 "기관의 전유물이었던 특허 투자 시장에 소액 투자자가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국내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도 IP 토큰증권화를 정책 의제로 제시했다. 올 1월29일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지식재산처, 대한변리사회,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등과 개최한 '2026년 제1차 IP 정책포럼'에서 IP 로열티를 토큰증권으로 민간 자본과 연결하는 방안이 공식 논의된 바 있다.

결국 관건은 속도가 아닌 순서라는 진단이다. 자본시장 업계 전문가는 "미국의 두 상품은 정형증권 토큰화가 아직 정답을 찾는 중이라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한국은 법과 인프라가 먼저 갖춰진 비정형증권에서 발행·유통 경험을 쌓아두면 이후 정형증권으로 넘어갈 때 그 경험이 시장 발전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