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3년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기조도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중동 지역 긴장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과 에너지 가격 불안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유럽과 일본, 뉴질랜드 등 주요국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시장에선 이번 금리 인상 자체보다 향후 한국은행의 추가 인상 여부와 통화정책 방향(포워드가이던스)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2023년 1월 이후 3년6개월 만의 금리 인상이다.
금통위는 국내 경제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소비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와 환율 영향, 내수 회복 등이 겹치며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인 2%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확대 등 금융안정 위험도 금리 인상 배경으로 제시했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문에서 "향후 통화정책은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는 가운데 성장 흐름과 금융안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운용하겠다"며 "추가 인상의 시기와 속도는 물가와 경기,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하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선 이번 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진 점과 함께 향후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둔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이날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기자간담회에서 8월 연속 인상 가능성과 최종금리 수준에 대한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한국은행의 이번 결정은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긴축 흐름과도 맞물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예금금리를 연 2.00%에서 2.25%로 0.25%포인트 인상하며 약 3년 만에 긴축 기조로 전환했다. ECB는 중동발 공급 충격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올해와 내년 물가 전망치를 모두 상향 조정했다.
일본은행(BOJ)도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0.75%에서 1.00%로 올렸다. 일본 정책금리가 1%대에 진입한 것은 1995년 이후 처음이다. BOJ는 경제와 물가, 금융여건을 점검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뉴질랜드중앙은행(RBNZ)도 이달 기준금리를 25bp(0.25%포인트) 인상한 2.50%로 결정했다.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양보다 인플레이션 억제에 무게를 두면서 통화정책 기조가 다시 긴축 국면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지만, 경제전망요약(SEP)을 통해 올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며 매파적 기조를 유지했다.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을 기존보다 높여 제시했고 물가 전망도 상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이번 금리 인상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금리 인상은 시장이 이미 예상했던 결과인 만큼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 금리차가 좁아졌다고 해서 외국인 자금이 크게 유입되거나 원화 가치가 즉각 강세를 보이는 구조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원화는 달러나 엔화처럼 글로벌 캐리트레이드의 중심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금리차 자체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며 "시장에선 금리 인상 여부보다 한국은행이 앞으로 얼마나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인지, 포워드가이던스에서 어떤 신호를 주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뉴질랜드 등도 각국의 물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에 나서고 있다"며 "국가 간 정책 공조라기보다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독자적인 통화정책 기조가 비슷한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