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전경. / 사진=뉴시스

여당이 '주가 누르기 방지법' 입법에 속도를 내면서 재계의 한숨이 깊어진다. 주주가치를 높여 저평가된 한국 증시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규제로 인해 기업의 세금 부담만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발표되는 세제개편안에는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포함될 전망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5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다.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의 80%에 미치지 못하는 상장기업의 최대주주가 상속이나 증여를 할 때 주가가 아닌 자산가치·수익가치를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되 하한선을 순자산가치의 80%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주가를 주당순자산으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배 미만일 때 적용된다.

현행 제도에서는 상장주식을 시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주가가 낮을수록 상속세 부담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일부 상장기업은 상속·증여 과정에서 배당을 축소하거나 주주환원을 지연하는 등의 방식으로 주가를 낮춰 세 부담을 줄인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시행돼 인위적으로 주가를 억누르는 행위가 차단될 경우 주주가치를 제고해 한국 증시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으며 지난달 15일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도 "입법이 잘 안 되고 지연되고 있다"며 "어떻게든 협조를 얻어 속도를 좀 내도록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법안이 시행될 경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고의적인 주가 억제를 막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업종별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모든 업종에 'PBR 0.8배'를 일괄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건설·철강·화학 등은 산업 구조상 PBR이 낮은 업종에 속한다. 공장을 짓는 데 수조 원을 투자해 장부상 자산은 많지만 제품 가격과 경기 변동에 따라 실적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는 크지만 미래 수익이 불안정해 시장에서 할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전기·가스 업종도 대규모 시설이나 부지를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서민 생활 안정과 물가 관리를 위해 정부가 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때문에 높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PBR이 대체로 낮다.

반면 IT·소프트웨어 기업은 기술·브랜드·인력 등 무형자산이 핵심 자산인 데다 미래 성장성을 더 높게 평가받기 때문에 PBR이 상대적으로 높다.

재계 관계자는 "PBR이 낮은 데에는 경기 흐름이나 기업의 실적, 업황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있음에도 이를 의도적 저평가나 주가 누르기로 낙인찍어 규제성 입법을 적용하는 데엔 무리가 있다"며 "업종별 특성과 기업 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치로 세금을 매기면 최대주주의 세금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상속·증여세를 마련하기 위해 보유지분을 매각하는 상황이 발생해 결국 기업의 경영권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순자산가치의 80%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산출하게 되면 오히려 기업의 가치가 시장이 평가하는 실제 가치보다 부풀려져 기업에 과도한 세금 부담을 지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별도의 보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금 부담이 지나치게 늘어 현실적으로 단기간 내 현금 마련이 어렵거나, 업종의 고유 특성 때문에 주가를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사유가 있는 기업은 별도로 유관기관과 세액 산정을 협의하면 될 것"이라며 "세액 산정 협의를 신청한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유동성이 매우 낮아 사실상 매각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기업 운영에 필수적으로 사용되지만 시장에서의 가치는 낮은 자산 등을 PBR 산정 시 일부 공제해주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