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에 대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제청을 요구했다. /사진=뉴스1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김성수 대법관 후보자 가운데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만 국회에 제출하고, 손 후보자에 대해서는 기존 후보군 중 다른 인물을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법부의 임명 제청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1957년 12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법관회의가 제청한 김동현 전 대법관의 대법원장 임명을 거부한 이후 약 69년 만이다.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재제청 요구'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기 전 대통령과 협의해 온 관례를 깨고 손 후보자를 서면으로 제청했다. 손 후보자는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조 대법원장에게 추천한 4명 중 한 명이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구조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면 사법 공백은 물론 위헌 논란과 정치적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사태는 이미 정쟁으로 번지고 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이 사전 협의 관례를 깬 것을 '사법 농단'이자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려는 자의적 권한 행사'로 규정하며 대법원장 퇴진과 사법 개혁까지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과 일부 법조계는 대통령에게 대법원장이 제청한 인물의 임명 동의를 국회에 요청할 헌법상 의무가 있다며 재제청 요구야말로 위헌이자 사법부 독립 침해라고 반박한다.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은 국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행법에 재제청 절차와 요건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대법원이 기존 추천위가 선정한 나머지 후보 가운데 한 명을 다시 제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 추천위를 구성하지 않은 채 제청과 거부를 반복하면 결국 청와대가 선호하는 인물이 제청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현행 법원조직법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를 새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재제청 요구로 돌파구를 찾으려다 또 다른 위법·위헌 논란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3월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으로 생긴 공석이 이미 5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 임기 중에는 현 대법관 후임 10명과 2028년부터 증원되는 12명을 합쳐 모두 22명의 대법관이 새로 제청·임명돼야 한다. 지금과 같은 충돌이 인선 때마다 되풀이된다면 대법원 재판 지연과 사법 기능 마비, 국민 불신의 증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 대법원장은 헌법상 제청권을 존중받아야 하지만, 대통령의 임명권 역시 형식적 절차로 치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전 협의라는 관행이 헌법과 법률을 대신할 수도 없다. 청와대와 사법부는 강 대 강 대치를 멈추고 이번 사태를 제청권과 임명권의 합리적 균형점을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재제청의 요건과 절차, 추천위 재구성 여부 등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헌법기관 간 힘겨루기로 사법 공백의 피해를 국민에게 떠넘기는 일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 이번 일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