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이 빤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불신이 곧 지옥이라면, 경찰은 지금 지옥문 앞에 섰다.
엊그제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오간 대화다. 한 지인이 연락도 없이 오지 않았다. 일행 한 명이 말했다. "경찰에 실종 신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냐?" 곧바로 다른 일행이 받아쳤다. "신고해도 소용없는 거 알면서!"
경찰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72년 만에 이뤄진 형사사법 체계 대변화의 최대 승자다. 축포를 쏴도 모자란 판에 마치 승자의 저주에 걸린 듯 비틀댄다. 장윤기 사건은 강간살인이란 강력범죄마저 증거인멸하고 사건을 축소할 수 있음을 전 국민 앞에 보여줬다.
[시대]는 천안 교회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4차례에 걸쳐 조명했다. 12번의 신고, 12번의 방관…. 열두 살 현수(가명)가 숨지기까지 5년여간 이어진 경찰의 한결같은 무신경함과 무책임함은 취재기자들을 절망케 했다. 현수는 죽기 한달여 전 생면부지 어른을 붙잡고 경찰을 불러 달라고 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현수를 학대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외할머니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제주 장모 씨와 60대 남성 A씨 실종사건을 멋대로 종결해버린 부 경장에게서는 무책임함을 넘어 남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조커'를 보는 듯해 소름이 돋는다. A씨 유가족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부 경장은 "연락이 닿았다"는 뻔뻔한 거짓말과 함께 신고 자체를 없애버렸다.
13만 경찰 중 일부의 문제일 것이다. 다만 특정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향찰(鄕察)'을 없앤다고, 실종 시스템의 결재권을 상급자로 바꾼다고 또 다른 '부 경장'이 나오지 않을까.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경찰 불신, 누가 만들었나.'
불신은 역설적으로 반드시 믿어야만 할 때 생기는 두려움이다. 처음부터 믿을 필요가 없다면 불신할 일도 없다. '경찰 불신, 누가 만들었나'라는 질문은 '누가 경찰을 믿어야만 하는 기관으로 만들었나'와 같은 의미다. 다시 말해 경찰을 믿지 못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게 만든 이들이 경찰을 '불신 지옥'에 내던진 저승사자인 셈이다.
오는 10월 검찰청이 사라지면 경찰은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이건 지난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모든 권력기관은 타락한다. 권력이 클수록 빨리 타락한다. 역사의 진리다. 대통령경호처가 그랬고, 안기부·국정원이 그랬고, 검찰이 그랬다. 그렇다면 다음은? 당연히 경찰이다. 내부 통제로, 임시 개혁기구로 그걸 막을 수 있다면 국정원과 검찰이 오늘날처럼 수술대 위에 오르진 않았을 것이다.
불신이 믿어야 할 때 생기는 역설이듯, 권력기관의 타락을 막는 유일한 방법도 역설적이다. 권력기관은 반드시 타락한다는 믿음만이 그 타락을 막을 수 있다.
야망은 야망으로만 제어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230여년 전 권력기관의 타락을 막고, 권력기관 간 균형을 이룰 방법을 거기서 찾았다.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어느 기관의 야망은 오로지 그 꼴을 보지 못하는 다른 기관의 야망을 통해서만 억제되는 것이다.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게 될 경찰의 주체할 수 없는 야망 역시 경찰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다른 기관이 있어야만 통제 가능하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제주 실종 허위 종결은) 일각의 이야기와 달리 현재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작동하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다. '검찰에 보완수사권이 있어도 저런데, 그것마저 없어지면 경찰은 누가 통제하나' 하며 걱정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공소청이 경찰의 모든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 이상의 경찰 개혁 방안은 없다고 확신한다. 거듭 말하지만 공소청을 믿어서도, 공소청이 착해서도 아니다. 야망은 야망으로만 제어되기 때문이다. 제주 실종사건 피해자들이 묻고 있다. '경찰 불신, 어떻게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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