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대법원은 병장 출신 A에게 징역 4년에 벌금 2000만원 추징금 1907만원을 선고했다. A가 중국 정부기관에 포섭돼 군사상 기밀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일반 병사가 수개월간 100장이 넘는 군사상 기밀을 빼내는데도 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실상 간첩 행위임에도 한국 법원이 내린 형량은 징역 4년이 전부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시대]가 이 사건을 추적했다.
2024년 8월4일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 육군 병장 A는 이곳에서 SNS를 통해 알게 된 한 중국인 남성 B를 만났다. 자신을 중국 '싱크탱크'에서 일한다고 소개한 B는 A에게 비공개 군사정보를 넘겨달라고 제안했다. 일주일 뒤인 8월11일, 중국 쑤저우에서 B를 다시 만난 A는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B는 착수금조로 1만5000위안(약 307만원)을 건넸다. 부대 내 휴대전화 촬영이 어렵다는 A의 말에 손목시계형 카메라도 제공했다. 부대로 복귀한 A는 그해 8월16일과 17일 한미연합군사령부 식단표와 연합훈련 숙영 지원 계획 33장을 찍어 넘겼다. 사흘 뒤인 8월20일엔 '프리덤 실드' 운영 안내문을 촬영해 전달했다. 촬영한 사진을 휴대폰에 옮기고, 이를 다시 B가 알려준 한 웹사이트를 통해 보내는 방식이었다.
군사자료를 넘길 때마다 B가 건네는 액수가 커졌다. 큰돈을 손에 쥔 A도 점점 대담해졌다. 10월에는 프리덤 실드 분임토의 계획과 사단 호국훈련 자료 31장을 출력해 촬영했다. 또 육군본부 주요정책 성과분석과 사단 연말 회의록을 촬영하기도 했다. 두 자료 분량만 75장에 달했다. 지난해 1월엔 한미 연합 대대급 육군과학화훈련전투단(KCTC) 훈련 방침도 전달했다. A는 2024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군사상 기밀을 넘긴 대가로 총 8만8000위안(약 1800만원)을 받았다.
첫 번째 의문. 병장 A는 어떻게 이런 군사상 기밀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간부 C의 ID를 알고 있어서다. 문제는 행정병이 간부 ID를 알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이다. 현역 육군 장교 D씨는 "훈련 외에도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가 워낙 많다 보니 행정병이나 당직병에게 ID를 알려주고 대신 업무를 시키는 일이 다반사"라며 "상급자의 계급이 높을수록 병사는 더 민감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 이후 각 부대는 간부 ID를 바꾸고 행정병이나 당직병에게 ID를 알리지 말라는 내용의 대대적인 교육이나 점검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시대] 취재에선 그런 징후를 찾을 수 없었다. 군에서 35년간 근무하고 지난해 만기 전역한 부사관 출신 E씨는 "일단 정보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부대를 상대로 보안점검을 강화하지만 그 이상 특별한 대책이 나온 건 보지 못했다"며 "간부들의 업무 과중으로 병사가 행정업무를 대신 맡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사태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병사에 의한 군 기밀 유출 사고 이후에도 업무과중을 이유로 간부 ID를 병사에게 제공하는 관행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두 번째 의문. 사실상 간첩 행위를 한 A는 어떻게 징역4년이란 비교적 낮은 형량을 받을 수 있었을까. 미국 해군 출신 진차오 웨이 하사는 2022년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18개월간 군함 무기 체계와 추진 시스템 등 기술·운용 자료 약 60건을 보안 메신저 등을 통해 넘겼다가 지난 1월 미 연방법원으로 징역 16년8개월을 선고받았다. 공교롭게도 웨이 하사가 이 정보를 넘겨주고 받은 돈은 A보다 적은 1만2000달러(약 1629만원)다. 더 적은 돈을 받았는데도 형량은 4배 무겁다.
가장 큰 차이는 A는 간첩죄 적용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A의 범행 당시 형법 98조 간첩죄는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하도록 제한됐다. 북한 이외 국가에 기밀정보를 넘기더라도 간첩죄 적용이 어려웠고, A 역시 당시 일반이적죄로 유죄를 받았다.
다행히 여야 합의로 형법이 개정돼 지난 13일부터 '외국 등을 위한 간첩' 조항이 신설됐다. 이제 A와 같은 이적행위는 간첩죄 처벌이 가능할까. 이것이 세 번째 의문이다. 정답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외국에 군사자료를 넘겼다고 무조건 간첩죄가 적용되는 건 아니다. 먼저 수사기관이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부터 '지령 또는 사주'가 있었음을 밝혀야 한다. 기밀유출을 요청한 외국인이 잠적하거나 외국 정부가 민간기업이나 브로커를 내세워 기밀유출을 시도했다면 간첩죄 적용이 쉽지 않다. 유추한 기밀자료가 '국가기밀'에 해당하는지도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
A 사건을 개정 형법에 대입해 보면 군 기밀 유출을 사주한 B를 붙잡진 못했지만, 자료를 보낸 웹사이트 등을 통해 외국(중국)의 지령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할 순 있다. 다만 A가 유출한 자료를 두고 법원은 군사상 기밀로 인정했지만, 군사기밀보호법상 지정된 군사기밀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군사상 기밀'과 '군사기밀(국가기밀)'은 달라 개정 형법을 적용해도 A에게 간첩죄를 묻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김후곤 대표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개정 형법이 규정하는 국가기밀의 개념이 모호해 향후 법적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며 "수사과정에서도 외국 정부나 기관이 민간을 앞세우거나 ▲암호화 메신저 ▲해외 클라우드 ▲제3국 법인 등을 이용해 정보를 받은 경우 (외국 정부와의) 연결고리를 밝히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희주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총알 하나론 사람 한 명을 죽이지만 국가기밀 유출은 수백만명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선 몰수·추징과 같은 가중처벌을 포함해 형량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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