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왼쪽)과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성수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거부하자 청와대는 즉각 반발했다. 양쪽 모두 '사법부 독립'과 '대통령 임명권'이라는 헌법상 명분을 앞세워 타협은 없다는 입장이다. 대화와 협의를 통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절충점을 찾아온 정치적 관례가 깨지면서 대법관 공백 장기화를 넘어 여권의 조 대법원장 탄핵 추진 등 권력 대충돌이 예상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2일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지난달 28일 청와대가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기로 하고 재제청을 요구한 지 25일 만에 나온 입장이다.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서 한다"며 "이번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에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달리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곧바로 언론 공지를 내고 "조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으로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라며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또 "대법관 1인당 연간 3500~4600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관 1인의 공백은 고스란히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의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며 "대법원장은 대법관 공백 장기화가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더 이상 현 상황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여권도 반발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재제청 거부는 3차 사법 쿠데타"라며 "국민은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문진석 의원은 "하필이면 추석 직전, 대통령이 출국한 다음 날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 요구를 거부했다"며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 "권력의 특성으로 보나, 권한의 본질로 보나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결코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며 "어제 청와대 가서 대통령과 기념 촬영도 하셨던데, 그때 논의했으면 될 일 아니었느냐"고 했다.

대법관 제청 갈등은 지난 1월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을 정할 때부터 시작됐다. 청와대는 후보 4명 중 우리법연구회 출신 김민기 수원고법 판사의 제청을 원했으나, 조 대법원장은 김 판사가 오영준 헌법재판관의 부인으로 이해충돌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지난 3월 도입한 재판소원제에 따라 부인이 관여한 대법원 판결의 위헌성을 남편이 헌재에서 다시 심판할 수 있고, 이 때마다 오 재판관의 기피·회피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

이런 입장 차이가 조율되지 않은 채 장기화되자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과의 사전 협의란 관례를 깨고 지난달 18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제청했다. 이에 청와대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재제청을 요구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사법·입법·행정부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제청권과 임명권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헌법의 공백을 타협과 양보란 정치적 대화를 통해 풀어왔지만, 양쪽이 각자의 권한과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헌법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법조계에선 이미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거부해야 한다는 성명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반면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법관 임명 시 사법부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임명권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며 "제청권과 임명권이 동등한 권한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번 기회를 헌법의 공백을 메울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판사 출신 강민구 변호사(법무법인 도울)는 "헌법기관 사이의 권한 다툼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권한과 한계를 더욱 명확하게 만드는 데 있다"며 "이번 갈등을 승패의 문제가 아닌 권한의 한계를 규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