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보드 없는 거리' 정식 운영을 이틀 앞둔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길목에 10대 학생 2명이 킥보드를 함께 타고 지나가고 있다. /사진=황지민 기자


"한번은 길도 좁은데 코너에서 킥보드가 갑자기 들어오는 거예요. 유아차 앞바퀴에 거의 닿을 뻔했다니까요."

'킥보드 없는 거리' 지정을 이틀 앞둔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인근에서 만난 주민 강모씨(44)의 말이다. 학원가 초입인 선릉로에서 골목 방향의 진입로 3곳과 도곡초등학교 앞 등 4곳에 '전동 킥보드 통행금지' 안내표지판이 붙었다. 도곡초 울타리를 따라 '대치동 학원가 전동 킥보드 통행금지 구역 지정'이라는 내용의 현수막도 걸렸다. 시행일은 9월30일, 낮 1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시간제로 운영된다.



서울시는 오는 30일부터 ▲대치동 학원가 ▲은평구 연신내 로데오거리 ▲송파구 위례트랜짓몰 보행로 등 3곳을 '킥보드 없는 거리'로 지정한다. 지난해 5월부터 시범 운영 중인 ▲마포구 홍대 레드로드 ▲서초구 반포 학원가 등 2곳을 더하면 총 5곳에서는 전동 킥보드를 운행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경우 일반도로에서는 범칙금 3만원과 벌점 15점, 어린이보호구역의 경우 범칙금 6만원과 벌점 30점이 부과된다.

[시대]가 '킥보드 없는 거리' 본격 시행을 앞두고 지난 28일 대치동 학원가와 시범 운영 중인 홍대 레드로드를 둘러봤다. 이날 오후 6시부터 1시간 동안 도곡초 앞을 지나는 전동 킥보드 수를 세어보니 모두 8대였다. 운전자는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었다. 앞 사람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전동 킥보드를 탄 학생 두 명이 빠르게 지나가기도 했다. 전동 킥보드 승차정원은 1명이어서 2명 이상 타는 것은 범칙금 대상이다.

인근 학원으로 향하던 고등학생 김모양(18)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다가 킥보드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치일 것 같아 무섭다"고 전했다. 주민 강씨도 "학생들이 많이 타고 다닌다. 위험하게 두 명씩 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동 킥보드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크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해서 ''킥라니'(킥보드와 고라니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서울시가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킥보드 없는 거리 후보지인 강남·송파·은평구 주민 2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5%(267명)가 킥보드 없는 거리 확대에 찬성했다.

지난 28일 '킥보드 없는 거리' 시범 운영 중인 홍대 레드로드의 킥보드 금지 표지 아래 공유 자전거와 킥보드가 주차되어 있다. /사진=전나경 기자



이미 킥보드 없는 거리를 시범 운영한 곳은 보행자를 위협하는 킥보드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범 지역 생활인구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민의 80.4%가 '전동 킥보드 무단 방치가 줄었다'고 답했다. '충돌 위험 감소'(77.2%) '보행환경 개선'(69.2%) 등도 긍정 평가가 높았다.

실제 [시대]가 지난 28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동안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인근에서 지켜본 결과 통행금지 시간대 지나간 전동 킥보드는 단 1대뿐이었다. 인근 식당을 자주 찾는 배달 라이더 김승만씨(54)는 "킥보드 금지 구역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예전에는 젊은 애들이 많이 탔지만, 지금은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킥보드가 사라진 자리를 공유 전기자전거 등이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페달보조(PAS) 방식의 공유 전기자전거는 단속 대상이 아니다. 실제 홍대 레드로드에서 킥보드가 1대 지나갈 동안 전기자전거는 개인용 6대, 공유 6대 등 총 12대가 지나갔다. '킥보드 통행금지' 표지 바로 아래에 전기 자전거 8대가 세워져 있기도 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킥보드 8대가 지나가는 동안 전기자전거는 모두 13대가 내달렸다.

전기자전거는 동력 방식에 따라 단속 대상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PAS 방식은 도로교통법상 일반 자전거로 분류돼 통행금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 손잡이 가속장치로만 움직이는 스로틀 방식이나 혼합 방식은 개인형 이동장치(PM)로 묶여 통행이 금지된다. 문제는 이를 바로 식별해 단속할 수 있느냐다.

방치 기기에 대한 처분 규정도 다르다. 전동 킥보드는 보도나 주정차 금지 구역에 방치할 경우 즉시 견인돼 견인료 4만 원을 내야 찾아갈 수 있다. 보관료도 30분당 700원씩 붙는다. 그러나 PAS 공유 전기자전거는 법상 자전거라 견인할 수 없다. 공유 전기자전거에도 동일한 견인료를 부과하는 조례 개정안은 서울시의회에 계류 중이다. 이 때문에 킥보드만이 아니라 전기자전거 등 개인형 이동장치(PM·Personal Mobility) 전반으로 규제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진유 경기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전기자전거는 다니는데 킥보드만 막는 건 반쪽 규제"라며 "걷는 속도는 초속 1.2m인데 자전거는 초속 약 5.5m로 네 배 이상 빨라 함께 다니면 피하기 어렵다. 제대로 규제하려면 자전거나 전기자전거도 함께 통행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자치구, 경찰은 킥보드 없는 거리 시행 당일 현장 홍보에 나선다. 경찰은 강제 단속보다는 계도 위주의 활동을 펼칠 방침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억지로 단속을 시도할 경우 도주 과정에서 오토바이보다 큰 사고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직접적인 적발은 지양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