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균 作 <向怒濤出使> 화선지에 수묵채색, 41X32cm, 2005
동양화에서 말하는 여백은 서양화의 공란이나 배경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것은 사상과 마음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양의 사상은 자연을 중심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어떠한 사물도 그리지 않는다. '채우기 위해 비운다'는 의미와도 같다.

안호균의 작품 ‘향노도출사(向怒濤出使)’는 글씨가 쓰여진 부분과 화면 상단이 비어있다. 그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도적 비움이다. 거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기 위한 마음을 작은 배로 표현한다. 거친 파도와 바람을 헤치며 나아가는 배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 여백은 마음의 힘찬 기상과 관람자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경치를 의경(意境)이라하는데, 여백으로 인해 의경이 확장돼 감상자의 마음에 닿는다.

여백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동양인들의 심성과 관련돼 있다. 비워둠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강조하거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백은 화가가 그리고자 한 의미를 강화시키고 의경에 대한 숨은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동양정신의 표현 수단이다.

동양화를 감상할 때는 표현된 형상을 음미하면서 그리지 않은 부분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동양화는 형상이나 색보다는 어떠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려진다. 향노도출사와 같이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의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여백을 통해 자유로운 마음과 생각에 의해 감상자만의 목표가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