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을 넘기고도 호텔 로비라운지가 아닌, 던킨도너츠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CEO가 있다고 한다. CEO는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을 말한다. 이 얼마나 멋진가. 그가 도대체 그러는 이유는 뭘까.
세상이 말하는 부족함이 하등 없어 보임(CEO)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그런다고. 하지만 꼭 그럴까. 그것만이 아니다. 추측건대 행복한 내 인생을 지속하기 위해서 혹은 육체의 나이는 차마 어쩌지 못해도 생각은 청춘으로 보다 젊어지기 위해서 아닐까.
CEO의 개인 이미지 관리(PI : Personal Identity)를 도와주는 컨설팅 비즈니스로 유명한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가 쓴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갤리온刊)에 따르면 이승한 회장이 날마다 젊어지는 비결은 ‘몰입하는 순간’ 덕분이라고. 그런가.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어쩐지 ‘글을 쓰는 CEO’라는 문장에 유독 이끌린다. 즉 ‘술(述)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깜짝 놀란다. 그것이 진짜가 아닐까 싶어서다. 어쨌든 술(述)이란 기록을 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메모(Memo)’다.
“메모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메모는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런 거다. 다만 메모하지 않으면 특별한 사람이 즉 한단계 레벨업으로 발전하는 자기계발을 도무지 기대할 수 없을 뿐이다. 해서 성공으로 곧장 가려면 안 마셨던 술(酒)도 때로는 해야 하고, 자기발전을 위해서 술(述)도 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지닌 바 재주을 뜻하는 술(術)에게도 부단한 관심을 갖고 키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 즉 일류들은 그래서 술술술(酒述術)에 능수능란한 거다. 그런 거다.
중국에는 이백이 그렇다. 조선에서 찾자면 이순신 장군(李舜臣 1545~1598)이 롤모델로 어울려 적격이다. 장군은 부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술(酒)자리를 자주 가졌다고 한다. 또 알다시피 우리에게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남겼지 않는가. 그러니 술(述)에도 빠지지 않았고 성심을 다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관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역부족자(力不足者) 중도이폐(中道而廢)’하는 어리석음의 우(愚)를 결코 범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체력과 용기, 자신감이 많이 부족한 것을 깨우치고 책뿐만 아니라 말타기와 활쏘기, 검술, 창술 등의 무술연마에 오로지 정진했다. 해서 타고난 재주는 부족했고 집안은 부유하지 않았으나 이를 문제로 보지 않았고 중도에 선을 긋고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니 장군이야말로 자기발전을 완성하기 위해서 ‘술술술(酒述術)’에 두루 많은 경험과 공부, 그리고 노력을 기울였던 역사인물, 요컨대 롤모델인 셈이다.
생각하건대 인생의 꿈과 목표는 모두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집안 형편이나 환경도 서로가 엇비슷하진 않을 것이다. 그뿐인가. 아닌 게 아니라 두뇌도 좋고 나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마다 타고난 재주도 공부하는 것도 사뭇 다를 것이다. 그렇다. 사람마다 처지가 아주 똑같진 않다. 그럴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악조건에도 성공해서 승승장구하고, 또 어떤 이는 호조건인데도 실패해서 중도좌절을 겪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렇다. 셋 중에 둘이 부족한 거다. 어떤 이는 술(酒)을 하지 않는데서 오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몰라서고, 또 어떤 이는 두뇌만 믿고 메모하지 않는 습관 즉 술(述)이 약해서다. 그리고 타고난 재주(術)만 믿고서 어릴 적부터 노력하지 않았거나 성인으로 커서는 상식에 젖어 꿈과 목표를 잃었거나 방심했기 때문이다.
왜? 시쳇말로 적자생존(적어야 산다는 뜻)이라는 유행어가 생겨났을까. 이에 대해 사카토 겐지가 쓴 <메모의 기술>(해바라기刊)이란 책의 추천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풀이한다. 이를 그대로 소개한다. 참고로 추천사는 윤은기 경영학 박사의 글이다.
언젠가 아인슈타인과 인터뷰하던 기자가 집 전화번호를 묻자, 아인슈타인은 전화번호 수첩을 꺼내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찾았다고 한다. 기자가 깜짝 놀라서 “설마 댁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시죠?” 하고 물었더니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집 전화번호 같은 건 잘 기억을 안 합니다. 적어두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걸 뭣하러 머릿속에 기억합니까?”
위에 얘기는 시사하는 바 크다. 장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과 모름지기 통해서다. 말인즉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뜻이다. 예컨대 기자에게 집 전화번호는 ‘쓸모있음’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겐 그렇지 않다. 집 전화번호가 순식간에 ‘쓸모없음’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억으로 기록이 쓸모없도록 만드는 것에 패자가 익숙하다면 승자는 기록으로 기억하는 것을 쓸모없도록 만드는 것에 익숙하다. 이게 승자와 패자의 극명한 ‘차이’다.
윤 박사는 말한다. 인간의 두뇌는 ‘하드 드라이버’라기보다 ‘램(RAM)’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개념일 것이라고 말이다. 말하자면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 늘 고심하는 사람보다는 무엇인가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머리를 비우는 대신 전화수첩에 집 전화번호를 적는(述) 아인슈타인의 행위를 두고서 이를 설명하는 의미에서 노력이란 말로 대신한 듯하다)사람이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머리가 복잡하면 정작 중요한 것을 담을 수 없다. 때문에 굳이 승자가 메모하는 이유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述)한 후 잊기 위해 하는 것이다’는 말이 설득력이 생겨나는 거다.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다. 그런 거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 作)라는 영화에서 강력계 형사 박중훈의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야!”
이는 제 할 일이 바로 쓸모다 라는 걸 강조하는 뜻이다. 인생도 그렇고 비즈니스도 그렇고 제 할 일을 한단계 레벨업을 하려면 쓸모없어 보이는 술(酒)자리가 마치 ‘굽은 나무가 대궐을 짓는 데 재목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지팡이로는 쓸모가 있다’는 것처럼 돌변하는 거다.
또한 장자가 말한 ‘무용의 용’으로 기억이 무용이 되고 기록이 용이 될 수도 있음이다. 옛날 송나라에 손이 트는 데 바르는 고약을 만드는 재주, 즉 술(術)에 능한 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어느 날 손님이 100냥을 낸다고 하니 얼른 재주를 팔았다고 한다. 어떻게 됐을까. 한가지 재주에만 기댄 송나라 사람은 그냥저냥 살았단다. 하지만 손님은 달랐다고 전한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아이템의 발견)을 통해서 큰 부자가 됐다고 한다. 해서 재주만 있다고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술술술(酒述術)에 두루 정통해야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