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이 오나라를 복속시킨 후 범려는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가서 자신의 친구인 문종(文種)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를 잡으면 좋은 활은 거두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잡으면 잘 달리는 개가 삶아지는 법이오. 월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 고난은 함께 할 손 치더라도 즐거움은 같이 나눌 수 없소. 당신은 왜 떠나지 않는 것이오?”(鳥盡弓藏, 兎死拘烹)
위에 이야기는 사마천의 <史記>에 등장한다. 구천은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의 주인공으로 월나라 왕을 말한다. 문종과 범려는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켰던 1등 공신이다.
사람은 마흔이 넘으면 생긴 대로 산다. 그래서 그랬는가. 관상학에서 말하길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한 인물’을 꼬집어 뭐랄까.
일테면 “동고(同苦)는 가능하지만 동락(同樂)은 결코 할 수 없는 인물”로 설명한다. 이처럼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보고서 그 사람의 인격, 운명, 재운, 수명 등을 살피고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을 일컬어 우리는 쉽게 ‘관상(觀相)’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관상을 범려는 매우 중요시했다. 그랬기 때문에 편지 한 통에 월왕 구천의 관상을 자세히 적어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문종은 어땠는가. 범려로부터 ‘은퇴하라’는 권고의 편지를 받고서도 이를 따로 적어두지 않았다. 즉 ‘술(述)의 힘’을 무시하므로 나중에 구천이 내린 검으로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밖에 없었다. 문종은 1등 공신으로 구천 곁에 남고자 했기 때문에 후반생이 비극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범려는 달랐다. 모든 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았다. 그리고 재산을 정리해 식구들과 함께 월나라에서 멀리 길을 떠났다. 이윽고 ‘제나라에 이른 범려는 성과 이름을 바꿔 스스로 치이자피라고 칭했다’고 한다.
참고로 ‘치이자피’란 중국 이름은 우리말로 해석하면 ‘술고래’라는 뜻이다. 이후 범려의 삶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행복했다. 그는 문종과 달리 ‘술술(酒述) 풀리는’ 인생으로 천하의 부자 상인이 돼 남은 후반생도 희극으로 맞이했다.
‘술술 풀린다’는 말을 한자(漢子)로 압축하자. 그러면 내 생각엔 ‘성공(成功)’이 된다. 서강대 김근 교수는 <욕망하는 천자문>(삼인刊)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룰 성(成)’자는 ‘도끼 무(戊)’와 ‘고무래 정(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정(丁)’ 자는 ‘두드릴 정(朾)’ 자와 같은 뜻으로 쓰였으므로 ‘성(成)’ 자의 자형적 의미는 ‘도끼나 망치, 끌 같은 도구를 계속 두드려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다’가 된다”고 말이다. 정말 기막힌 해석이다.
공(功) 자도 성(成) 자와 마찬가지다. 파자하자. 그러면 정교한 장식을 의미하는 공(工) 자와 자기계발을 뜻하는 력(力) 자가 합쳐진 것을 볼 수 있다. 요컨대 공(功)이란 ‘스스로 힘으로 (무언가를) 정교하게 장식하다’는 의미가 함축된 한자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成功)’이란 한자의 의미를 두고서 ‘(문제가 막히지 않고) 술술 풀린다’로 나는 정의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내친 김에 재미있는 스토리(逸話)를 하나 소개한다. ‘미국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손욱 (주)농심 회장이 쓴 <십이지 경영학>(페이퍼로드刊)이 출처다.
미국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벽돌 공장에서 노동을 하던 13세 때의 일이다. 동네 교회로 들어가는 길이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창길 되어 불편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존은 7센트밖에 안 되는 임금에도 매일 벽돌 한장씩을 자기 공장에서 사다가 그 길에 깔기 시작했다. 혼자 완성하려면 2년이 걸릴 엄청난 일이었다. 놀랍게도 1개월 안에 기적이 일어났다. 존의 모습을 보고 이기적이고 형식적인 믿음만을 지녔던 교인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깨우쳐 그 길뿐만 아니라 낡은 교회까지 신축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꿈을 가진 소년의 좌우명은 씽킹, 트라잉, 그리고 트러스팅(Thinking, Trying and Trusting)의 3T였다. 생각과 노력 그리고 믿음. 워너메이커의 3가지 성공 방식은 그가 보여준 봉사정신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경영자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잘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3T’에 깜짝 놀라 주목했다. 3T를 영어가 아니라 한자로도 표현이 가능해서다. 3T를 세로로 나란히 포개자. 그리고 180도로 그것을 역회전시키자. 그러면 한자 ‘주(主)’ 자로 읽힌다. 즉 ‘주인정신’을 의미한다.
그렇다. 워너메이커의 3가지 성공 방식(씽킹, 트라잉, 트러스팅)의 구슬을 하나로 모아서 꿰면 ‘주인정신’이란 보석이 탄생하는 것. 또 있다. 씽킹은 ‘술 마시고 시 쓰는’ 이백이 그랬던 것처럼 술(酒) 한 잔 할 때가 오히려 창조적이다. 막힘이 없고 자유롭다. 트라잉은 노력이니 내 보기엔 술(述)이 된다. 트러스팅은 신뢰를 얻는 재주가 되므로 술(術)이나 다름없다.
교회로 들어가는 진창길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주인정신을 가진 존은 달랐다. 자기 힘으로 계속해서 벽돌 한 장씩을 깔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당면한 문제(진창길)를 술술술 푸는 ‘성공’의 기적을 낳았던 것.
자신의 업무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지금 고민하는가. 이때 고민보다 효과적인 것이 ‘메모’가 된다. 사카토 겐지는 <메모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조언한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의 메모’가 바로 그것이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나 장기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날에는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거나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머릿속을 정리하려면 어떤 메모를 해야 할까?
우선 그날 할 일을 정리한다. ‘처리할 일’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애용한다.
1. 먼저 큰 종이에 자신의 기분이나 심적 상태를 적는다. 어느 정도의 일을 소화할 수 있을지를 체크하는 것이다.
2. 날짜, 요일, 시간을 큰 글씨로 적고, 요일별로 평소의 업무를 적는다.
3.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적는다.
4. 그 아래에는 그 일을 지금 해야 하는지, 아니면 오후에 해도 좋은지를 적는다.
5. 일의 요약, 정리함으로써 머릿속이 정리된다.
이렇듯 ‘적는다(述)’에 충실한 자세로 임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가 보면 어느새 당신은 훌륭한 사원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당신도 기업의 임원이 되고 경영자가 될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공적이든, 사적이든 꼼꼼하게 기록하는 사람이 인생과 비즈니스의 패자가 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승자는 ‘글 쓰는 사람’이 누린다. 범려가 후반생을 참으로 멋지게 살 수 있었던 비결에는 평소 ‘메모하는 습관’이 한몫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1등 공신으로 다가올 화禍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편지에 ‘월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 고난은 함께 할 손 치더라도 즐거움은 같이 나눌 수 없소’라고 적었던 범려는 행복하게 살았다. 반면에 문종은 적지 않았기 때문에 ‘떠날 때’를 놓쳐서 불행하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